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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인생 살지 않아 사람냄새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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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인생 살지 않아 사람냄새 알죠”
  • 김학용(디트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3.10.28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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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장선거 출마예상자 ①최민호 전 행복도시건설청장

최민호 전 행복도시건설청장(57·전 충남도 행정부지사)은 작년 세종시장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내년 세종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최 전 청장은 죽림리 푸르지오 아파트에서 살다가 지난 2월 매물로 나온 연동면 한옥을 구입해 자리를 잡았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유권자가 많은 아파트에 살 일이지 왜 한적한 곳에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장·차관들이 전원주택, 특히 한옥을 지어 살고, 외국손님들도 집에서 만나면 그것 자체가 좋은 외교"라며 "이런 사례가 많아져야 세종시가 명품도시가 되고 균형발전이 된다"고 답했다.

'먹물' 한계 벗어나려 해병대 자원

고시(考試)한 사람답지 않게 해병대에 갖다 온 것으로 안다.
"당시는 해군해병이었다. 고시라는 건 ‘먹물’의 세계 아닌가? ‘두뇌의 인간’ ‘먹물의 인간’에서 보이는 나약함, 이기적인 것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근육질의 인간, 의리의 인간들 세계’에 나를 던져보고 싶었다."

고시 합격하고 나서 입대했나?
"고시에 합격하면 장교로 가게 돼 있다. 나도 육군으로 가게 돼 있었는데 내가 해병대로 바꿨다. 일부러 지원했다."

해병대서 얻은 것은?
"해병대는 고된 훈련 속에서 생겨나는 결집성이 있다. 동기애가 끈끈하다."
그는 해군해병대 동기회장을 15년 했다고 한다. 그저 한번 해병대를 경험한 게 아니라 진짜 해병대 출신이었다.

행정고시는 언제 합격했나?
"대학 3학년 때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의 아내(전광희)는 대학 1년 때부터 사귀고 있었다. 고려대 여학생이었다. 여자 친구에게 고시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10월에 합격했다."

"학창시절엔 2류 인생"

머리가 좋은 것 같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2차 인생’이고 ‘2류 인생’이었다. 우리 집은 4형제다. 전부 다 시험 봐서 가던 일류학교(대전중)를 나왔다. 나만 떨어져서 한밭중을 다녔다. 누님들은 대전여중 나왔다."

자신을 너무 믿었던 것 아닌가?
"나는 집안에선 무녀리였다. 형님들은 전부 명문대 나왔다."

중학생 최민호는 집안이 서울로 가면서 보성고를 다녔다. 그러나 전기대에 낙방하고 후기인 한국외국어대에 들어갔다. 학창시절 그는 그의 말처럼 ‘2차 인생’이었다. "고시를 했던 것은 공직에 대한 사명감이나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도 일류 소리 한번 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바라던 ‘최고 집단’에 들어갔다. 처음엔 만족감이 컸다. 그런데 막상 그런 그룹에 들어가 생활해보니까 공부 잘하는 사람은 소견이 좁고 이기적이며 속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나이들의 세계’ 해병대에 자신을 던졌다.

공무원을 안 했다면 무슨 일을 했겠나?
"지금도 그쪽으로 갔어야 옳지 않았나 하는 직업이 있다. 언론이다. 나는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 다닐 때 장래 꿈이 뭐냐고 하면 나이답지 않게 칼럼니스트라고 했다. 잭 앤더슨이라는 유명한 칼럼니스트 얘기를 듣고부터다. 그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한번 쓰면 세계가 움직여진다고 했다. 그 말에 너무 매료가 됐다."

부지사 퇴임할 때 색소폰 분 이유?

고시 안 했으면 신문사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칼럼니스트다."
이젠 전문 영역을 거친 사람들이 글 쓰는 데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기회가 되면 글을 쓰고 싶다."

부지사 퇴임 때 색소폰을 불었다. 이유가 있었나?
"선배들의 정년퇴임식을 많이 봤다. 뭔가 초라해 보였다. 퇴임식이 서러워하고 눈물을 흘릴 일은 아니다. 나는 퇴임할 때 피아노 연주를 해주겠다는 맘을 먹고 피아노를 배웠지만 퇴임식장에서 피아노는 어려웠다. 그래서 한국예술종합대 CEO과정에서 배운 색소폰을 연주한 것이다."

책을 3권이나 썼던데.
"하나는 <공무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다. 내무부(행정자치부)가 없어지면서 공무원 8000명의 자리가 없어졌다. 내 자리도 없어졌다. 그때 낸 책이다."

그때 어디에 있었나?
"당시 내무부에 자치제도과장이라는 요직에 있었다."
요직인데도 자리가 없어졌나?

"김대중 정부는 내무부가 지방자치를 말살하는 부서로 보았다. 그 핵심 부서로 지목된 지방기획국은 전체가 없어졌다. 국 전체가 통째로 대기발령을 받았다."

IMF 사태 때 대기발령 받아

당황스러웠겠다.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졌으니 집안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겠나? 더구나 당시는 IMF 때문에 구조조정이니 정리해고니 해서 길거리에 나앉는 상황이었으니…"

집에서도 걱정했겠다.
"집에다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는 몰랐나?
"처음엔 말을 안 했다. 부모님께 대기발령 받았다는 말씀을 어떻게 드리나? 그땐 대기발령 받고 6개월 안에 보직을 못 받으면 자동 면직이었다."

긴장도 됐겠다.
"긴장할 수밖에. 그때 대기발령 받은 동료들 중엔 너무 충격이 커서 졸도한 사람도 있다. 우리 부서에서 30여명이 대기발령을 받았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침에는 가방 들고 나와서 구파발에서 지하철을 타고 양재역까지 갔다 오곤 했다."

빈 사무실도 안 줬나?
"책상이 없어졌는데 출근할 데가 어디 있나? 양재까지 갔다 와서 아무데서나 점심 먹고 퇴근하는 척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며칠을 그렇게 했더니 속에서 울분이 터졌다. ‘내가 뭐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내무부 지방제도과장을 명예로운 자리로 알고 일 해왔는데 갑자기 내가 나쁜 놈이 된 꼴이었다."

"난 복지부동 안했다"

대기발령 공무원 최민호는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책을 쓰겠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그땐 공무원들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왜 공무원들이 매도돼야 하는가? 일부 공무원들이 잘못한 것은 있지만 열심히 일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 얘기는 무시하고 나쁜 면과 무사안일 복지부동 ‘철밥통’으로 매도되며 뭇매를 맞아야 하는가?"

그는 ‘분노의 반박문’을 써 내려갔다. "아니다, 우리는 ‘철밥통’이 아니고, 난 복지부동 안 했다. 죽어라고 열심히 했다. 나, 술 사준 사람 있으면 누구라도 나와 봐라"고 외쳤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공무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였다.

반응은 어땠나?
"공무원 사회에선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팔리지는 않더라.(웃음)"

장편 미래과학소설‘아웃터넷’의 저자

그는 <아웃터넷>이라는 장편소설도 썼다. ‘아웃터넷’은 인간끼리만 소통하는 인터넷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만든 그의 조어(造語)다. 인간 바깥의 자연까지 소통 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의미의 용어다. 안면도 국제꽃박람회를 준비하고 치르면서 얻은 영감으로 쓴 미래과학 소설이다.

소설 속엔 꽃에서 나오는 파장(波長)을 읽어내는 기계인 ‘플라워텔레스코스프’를 만들어 꽃과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도 나온다. 소설가 김진명은 "50년 후에나 나타날 새로운 소설 장르의 조산(早産)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최 전 청장은 <풍요로운 삶 품격 있는 이웃, 세종>이란 책도 냈다. 세종시장 출마할 때 엮어낸 자서전적 책이다.

소설 작법을 배웠나?
"이런 얘기를 수필식으로 쓰면 재미없어서 누가 읽어보겠나? 소설 형식을 빌려야 되겠다 싶어 소설로 썼다. 장편소설이다. 작법은 전혀 모른다. 배운 바도 없다. 그냥 썼다."

결정이 애매한 경우 판단하는 방식은 ‘분석’ 쪽인가 ‘직관’ 쪽인가?
"직관도 분석도 아니다. 문제의 본질이 뭔가를 파고든다. 그러면 답이 나온다."

일할 때 성실한 사람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 중 더 신임하는 쪽은?
"성실한 사람이다."

이유는?
"일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조직이 한다. 성실하면 조직으로 보완이 가능하지만 성실성이 없고 능력만 있다면 장난을 칠 수 있다. 그러면 조직이 망가진다. 머리 좋은 친구들은 일은 잘하지만 출세나 승진과 부합되지 않으면 매정한 면이 있다."

심 전 지사 "뒤통수만 봐도 예뻐"

충남도 시절 심대평 지사가 ‘최민호는 뒤통수만 봐도 예쁘다’고 했다는데 들어봤나?
"들었다."

어떤 점 때문이었다고 보나?
"진심으로 심 지사를 존경했다. 그분은 선비다운 모습이 있다. 아버님과 스타일이 같았다. 교육적이고 성실한 분이다. 나도 그런 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모셨다. 그래서인지 뭔가 아이디어를 내서 보고를 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셨다."

이심전심이었다는 얘기?
"(심 지사 같은) 그런 스타일이 되고 싶었다. 지사지만 사석에선 선생님 같이 느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정치인이 갖는‘+α’없어"

국회 쪽이 아닌 단체장 쪽으로 도전하는 이유는?
"나는 행정공무원 경험이 있다. 정치는 뭔가 플러스알파가 필요한 것 같다. 그것을 나는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정치 쪽으로 가면 잘 할 것 같지가 않고 자치단체장을 하면 잘할 것 같다."

세종시장을 하려는 이유는?
"세종시는 건설 초기의 도시다. 건국 초기의 나라와 같다. 고향 땅 세종시를 명품도시로 만드는 데 주춧돌을 놓는 일은 사나이가 한번 품을 수 있는 꿈 아닌가? 세종시라는 밥상을 처음 차린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종시를 어떻게 꾸미고 싶은가?
"세종시에는 연기군이 다 들어가 있다. 도시와 농촌 지역이 균형 발전하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

우리나라엔 그런 도시가 없나?
"추구하지만 아직 이뤄낸 곳은 없다."

이유는?
"일본에 가면 농촌은 농촌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좋다. 농민들은 도시를 동경하지 않는다. 농촌의 생활수준도 도시와 비슷하다."

"워싱턴처럼 만들고 싶어"

최 전 청장은 미국 수도 워싱턴DC를 세종시의 모델로 보고 있다.

워싱턴은 어떻게 하고 있나?
"워싱턴은 관공서가 밀집돼 있는 도시지만 생활권은 버지니아주(州)가 있는 쪽의 농촌 전원 지역이다. 전원 지역이 훨씬 아름답고 풍요롭다. 근무는 워싱턴 도심에서, 삶은 전원 지역에서 한다."

세종시는 (주거지역과 업무지구를 구분하는) 도시설계가 이미 끝난 상태 아닌가?
"그게 제대로 안 돼 있다."

‘첫마을 아파트’가 주거타운 아닌가?
"첫마을에 36개 기관의 장·차관들이 살게 된다. 국책기관을 합하면 60~70명이 오게 되는데, 그분들의 주거지가 연기군의 전원지역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거 타운이 농촌지역으로 더 퍼져야 한다는 얘긴가?
"그렇다. 장·차관 등 공무원들이 한 동네에 다 모여 사는 게 아니라 전원 지역으로 분산돼야 한다. 세종시 행정타운에서 근무하는 고위직들이 농촌에 거주한다면 농촌도 발전하지 않겠나?"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보람 있던 일은?
"행정자치부 시절 시행됐던 ‘공공근로사업’이 있었다.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공공근로사업이 처음 나왔기 때문에 개념과 용어 등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그것을 ‘공공근로사업’이란 이름으로 통일하고 지침을 만들어 전국의 각 기관에 내려 보냈다."

IMF 때문에 대기발령 받은 공무원이 IMF 대책 사업을 주도했다니 아이러니다.
"그런 셈이다. 대기발령 받고 집에서 책을 쓰고 있는데 행정자치부에서 연락이 왔다. ‘놀면 뭐하냐? IMF 대책 태스크포스 만드는 데 보직은 없지만 네가 팀장이 돼 달라’는 것이었다."

‘표해록’의 주인공 최부가 16대 할아버지

그는 자신이 대기발령자였으나 실업자 구제대책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다. 월급도 수당도 없었으나 청와대 회의에서 참석해 보고도 하면서 IMF 대책을 수립했다고 한다. 충남도 근무 시절에는 꽃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경험이 잊히지 않는다. 당진의 함상공원은 해군해병대 출신인 그가 해군참모총장에게 건의해서 만든 그의 ‘작품’이다.

그는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 중앙공무원연수원 시절 일본인들이 오면 일본어로, 말레이시아 공무원들에겐 영어로 강의했다. 연수원에서 영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강의를 하는 공무원으로 그가 유일했다.

세계 3대 표류기로도 일컬어진다는 <표해록(漂海錄)>의 주인공이자 저자 최부(崔溥·1454~1504)는 그의 16대 할아버지다. 선친 최기홍은 <표해록> 국역을 위해 일부러 고전국역원에서 한문을 배웠고, 1977년 자비로 책을 출간했다. <표해록>은 그 뒤 언론을 타면서 영문과 중국어로도 나왔다. 몇 해 전 가족들은 최부 할아버지가 500년 전 중국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걸어갔던 ‘표해록 루트’를 따라 절강성에서 북경까지 답사여행을 했다. 최 전 행복청장은 "지금도 지명이나 풍경이 할아버지가 쓴 내용과 정확히 일치해 또 한 번 놀랐었다"고 했다.

디트뉴스 편집위원
사진=김재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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