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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 원작에 대한 예찬으로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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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 원작에 대한 예찬으로 읽어야
  • 송길룡(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26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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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비비안 리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비비안 리

최근 개봉한 영화 <블루 재스민>은 다른 무엇보다도 1935년생이니 올해로 78세인 우디 앨런 감독의 노익장을 과시할 만한 작품 중 하나다. 수년 만에 한편을 내놓는 방식으로서의 제작이 아니라 매년 한편씩 내놓는 숱한 작품들로 다져진 저력의 산물이라는 점, 그것도 초기에 몸담았던 미국의 이른바 독립영화 제작환경으로부터 빠져나와 적지 않은 혹평에 시달리면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할리우드 판에 <매치포인트>(2005)로 성공적인 첫발을 들였으며, 이후에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흥행과 비평적 성과를 끌고 온 그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정말 괴력의 창작적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들을 뒤늦게 남다른 관심으로 살펴온 나의 관점에서는 <환상의 그대>(2010)에서부터 창작상의 참신성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봤고, 이후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로마 위드 러브>(2012)로 이어지며 유럽 명소를 훑는 과정이 영화적 감각의 쇠락을 동경의 대상인 역사적 도시 미관으로 치환시키고자 한 의도의 발로였다는 의심을 완전히 일소하지는 못한 편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이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최근 몇 작품들에 대한 나의 부정적 평가가 결코 함량미달의 작품을 대하듯이 표출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매 작품들마다 어떤 수준 이상의 기대를 영화광들에게 ‘전염’시키는 기묘한 마력을 지닌 영화연출자다. 결코 범작들이라고 단박에 제쳐둘 만큼 단순한 제작스타일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첨언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량과 재능과 탁월한 영화적 재치를 생각하면 그의 최근작들에 대한 나의 실망감은 의외로 크다. 노령의 영화감독이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와 반대로 젊은 연출자들을 능가하는 그의 왕성한 창작 열기가 도리어 그 결과물들에 대한 역반응을 나타냈다고도 할 수 있다. 충분히 그는 독특한 자신만의 참신성을 십분 발산할 신체적·심리적 자원이 있다고 믿는 터이기 때문이다.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영화 <블루 재스민>에 대한 어떤 평가는 그의 최근작 중 가장 뛰어난 결과라는 극찬을 서슴지 않는데, 나로서는 그게 ‘립 서비스’ 정도로 여겨진다. 오히려 이 작품은 시침 뚝 떼고 원작을 밝히지 않은 원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엘리아 카잔, 1951)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원작과의 상호텍스트성 측면에서 보면 새로운 원작 해석 버전이라기보다 차라리 원작 자체에 대한 숭배의 형상화라고 할 정도다. 그러니까 어느 측면에서도 참신성을 찾기 어려운 ‘대놓고 모방작’이다. 물론 아주 세련된 기법으로 포장한 일급 모방작이라 할 만하지만.

아무리 고귀한 순도 100% 다이아몬드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존재하는 다른 형상을 본떠 모양을 낸다면 그것은 사실 너무나 비싸게 비용을 지불한 초호화급 모방품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가짜’인데, 수식을 달자면 ‘엄청 고귀하게 정성들여 만든 가짜’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곧바로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그런 값비싼 가짜를 만드는가? 새로운 진짜를 따로 만들지 않아도 될 만큼 원형에 대한 맹렬하고 극단적인 숭앙심이 그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작의 이름을 붙이는 것조차 엄청난 실례가 될 것이다. 어차피 알 사람은 알 테니 굳이 알릴 필요도 없다.

고로 <블루 재스민>이라는 영화를 내용적으로 파고들어 상류사회가 어떻고 상류여성이 어떻고 하는 것은 별로 재미없는 소일거리일 뿐더러 그것 자체가 코미디다. 우디 앨런 감독의 전력을 통해서 보면 그런 짐작은 너무나 쉽게 납득이 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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