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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부부의 단란했던 사진 같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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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부부의 단란했던 사진 같은 그림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9.28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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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作 '카드놀이 하는 부부'

이념이 가족과 사랑보다 우선할 수 있을까. 결과론이지만 월북화가 이쾌대(1913-1965)의 경우는 그렇다. 6.25때 어쩔수 없이 북한군 선전미술제작에 참여한 것이 단초였지만 선택의 갈림길에서 끝내 월북을 선택했다.

월북 전 그의 러브스토리는 장안의 화제였고, 자식 사랑 또한 끔찍했는데도 말이다.

대표작 ‘카드놀이 하는 부부(1930)’는 작가 자신과 부인 유갑봉이 모델이다.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세잔의 작품을 유난히 좋아했던 작가가 세잔에게 헌정의 의미도 담아 그렸다고 한다. 단순한 구성과 어두운 색조 등 여러 면에서 세잔의 작품과 닮은 구석이 많다.

부부가 장미꽃이 만개한 정원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장면이다. 당시로선 보기 드문 현대화된 부부의 모습이다. 햇빛에 반사돼 금빛으로 변한 테이블 표면에서 화사한 오월 어느 날이 연상된다.

부부는 카드놀이 중 인기척을 느꼈는지 경직된 표정으로 동시에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초점은 부인에게 맞춰져 있다. 파란 저고리에 붉은색 옷고름과 소매 깃이 검은색 계열의 남편 옷 색과 대비를 이루면서 안정감을 준다. 포도주 병과 흐트러진 몇 장의 카드가 경직된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린다. 그림이지만 단란했던 순간의 촬영한 사진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화가는 카드놀이 뿐만아니라 아내를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다.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 이쾌대만의 애정표현 방식일게다.

이쾌대의 결혼 얘기는 당시 화단의 화젯거리였다. 대지주의 아들인 작가는 서울에서 고교 재학 중 첫눈에 반한 여고생에게 수없이 연서를 보내는 구애 끝에 결실을 맺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오래가지 못하고 생이별을 맞는다.

6.25가 발발했을때 이쾌대는 병환중인 노모와 만삭인 아내 때문에 피난을 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북한군의 선전미술제작에 가담하게 됐고 서울 수복 후 국군에 체포돼 포로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1953년 남북한 포로교환 때 북한을 택했다. 아내와 1녀 3남을 둔, 행복했던 가장이 선택한 행보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구석이 많다. 일설에는 남한을 선택할 경우 부역자란 낙인이 찍혀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불가능할거란 지레 판단에 어쩔수 없이 북을 택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때문에 좌익분자의 가족이란 멍에를 쓴 부인과 자녀들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독립운동가였던 형 이여성까지 월북을 했으니 그 후유증은 오죽했겠는가. 때문에 1987년 해금 전까지 이쾌대는 우리 미술사에서 조차 잊혀진 화가였다.

하지만 남편 사랑이 끔찍했던 부인은 1980년 죽기 전까지 남의 눈을 피해 남편의 작품을 벽장에 고이 간직해 온 끝에 해금을 맞으면서 빛을 보게 된다. 비록 부부의 연을 다하지 못했지만 남편의 분신인 작품에 대한 애정과 이를 지키려는 부인의 헌신적 노력과 순애보의 결과물이다.

육군사관학교내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과 모처럼 긴 연휴와 함께 추석 귀성행령이 이지고 있는 이즈음 근현대 화가 이쾌대와 그의 작품 ‘카드놀이 하는 부부’가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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