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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지 않은 취객 선비의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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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지 않은 취객 선비의 '실례'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9.15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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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현 作 소나무에 기댄 노인. 18세기

취객의 꼬락서니가 가관이다. 왠간하게 취해 망측하고 남우세스러운 모양새다. 요즘 유행어로 '꽐라'가 된 상태다. 눈은 아예 감겼고 게타리조차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꼴이 영 밉상은 아니다. 희극의 한 장면처럼 우스꽝스럽다. 건강(?)한 웃음을 주는 그림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 오명현이 그린 '소나무에 기댄 노인(18세기)'이다.

평양 출신인 작가로 생몰연대가 불분명한데다 남긴 작품 또한 몇 점 안 되는 베일에 가려 있는 화가다. 작풍은 은근히 해학적이다. 양반의 꼴사나운 행실을 에둘러 꼬집고 모른 척 눙치는 식이다.

오명현의 또 다른 작품 고깔 쓴 스님이 소나무 아래서 점을 치는 ‘점치는 스님’도 이 작품과 매 한가지다.

그의 작품 중 해학적으로만 본다면 술 취한 노인의 행태를 묘사한 '소나무에…'가 단연 백미다.

차림으로 보아 분명 지체 높은 양반이 분명하다. 낮 술에 취한 노인의 얼굴은 불콰하고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소나무가 아니면 금방 나동그라질 찰나다. 낮 술에 대가 없다는 말이 달리 나온 말이 아닌가는 하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이미 한 차례 넘어진 듯 갓은 찌그러져 있고 옷매무새 또한 말이 아니다. 우람한 소나무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앞 춤에 손이 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급한 나머지 시원하게 실례를 한 후 한숨 돌리는 표정이다. 노인은 괴춤을 고치면서 소나무 등걸에 난 실례의 흔적을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려 확인한다. 비록 취했지만 수컷의 본능은 여전하다는 상징적 의미일게다.

의복과 무늬 장식의 가죽신, 한껏 모양을 낸 지팡이로 보아하니 행세께나 하는 양반이 분명하다. 탕건 밑으로 볼썽사납게 머리가 삐져나오고, 손질 잘했을 턱수염과 구레나룻은 제멋대로다. 옷은 온통 풀어 헤쳐져 있고 맨살이 그대로 보인다.

지체 높은 선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도록 마셨는지…, 양반의 일탈을 꼬집는 소재의 작품이지만 보면 볼수록 입가에 웃음을 띠게 한다. 좋은 벗을 만나 권커니 잣거니 하다 보니 주량을 크게 초과된 모양이다. 요즘 애주가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일방적으로 추태나 꼴불견으로 몰면 아마 그림속 노인은 억울해 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일탈이라고 비난하고 꼬집을지 몰라도 이를 휴식, 기분전환이라며 아주 가끔 즐기는 부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우스꽝스러운 노인의 행태가 되레 정겹게 보인다. 보는 사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니 '행복한 웃음값'으로 눈감아 주자.

그게 평양의 풍속화가 오명현이 후대에 전하는 작의(作意)는 아닐는지. 들판이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넉넉한 가을을 앞두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추론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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