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빨래터에서 혼쭐나는 스님
상태바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빨래터에서 혼쭐나는 스님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7.07 1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윤복 작. '표모봉욕'
신윤복 作 표모봉욕(漂母逢辱). 18세기.

한적한 절벽아래 빨래터가 두런두런 소란스럽다. 왠 노파가 까까머리 스님과 대거리를 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반대편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여인은 오불관언이다. 노파는 빨래 방망이로 스님을 당장 후려칠 기세인데 여인은 무심하게 빨래 방망이만 두드리고 있다.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중 하나인 혜원 신윤복(1758-?)의 '표모봉욕(漂母逢辱·18세기)'이다.
 화제를 연결지으면 낯선 이상황은 단박에 이해가 된다. '빨래하는 여인이 욕을 보다'라는 뜻이다. 지나가던 젊은 스님이 빨래하는 여인에게 수작을 걸다가 함께 빨래 온 노파에게 혼쭐이 나고 있는 모양새 쯤으로 해석이 된다.

인적 없는 계곡의 빨래터이다 보니 스님이지만 젊은 혈기에 잠시 흑심을 품은 모양이다. 노파의 방망이 세례에 스님은 혼비백산해 장삼과 승건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상황이 꽤나 험악했음이다. 빨래 방망이를 흔들며 한참 실랑이를 벌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노파의 힘으로는 스님의 완력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노파의 힘이 소진돼 지친 탓인지 긴장감은 덜하다. 더 이상 스님의 수작을 말릴 여력이 없는 탓일까.

그 찰나를 놓칠세라 스님의 강한 눈빛은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빨래하는 여인을 향하고 있다. 스님은 봉변은 둘째 치고 여인과 눈 맞춤이라도 고대했는데 여인은 무심하게 빨래 방망이만 두드리고 있으니 멋 적어 머리만 긁적인다. 이래저래 스님 가슴만 타들어 간다.

지세를 보니 여인은 마을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계곡까지 빨래를 나온 것을 보면 여인은 여인대로 어떤 속셈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행색을 보니 지체 높은 양반집 아낙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머리 스타일이 낯설다. 장옷과 비슷한 개두(蓋頭)라는 의상이다. 장옷은 탈착이 자유롭지만 개두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거추장스런 개두를 둘둘 말아 머리 위로 올리고 빨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개두를 누가 쓰느냐다. 궁녀나 양반집 부인들이 외출할 때 사용하기도 했지만 흔히 상을 당한 여인이 외출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스님이 상중인 여인에게 농을 걸다니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신윤복 작. 단오풍정.

혜원의 또 다른 그림 '단오풍정'에서는 스님이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보더니 이 작품에서는 여인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고 있다. 스님을 내세운 혜원의 작의(作意)가 관음에서 직접행동이라니 그쪽으로의 진일보가 아닐 수 없다.
혜원이 농 짙은 여러 점의 춘화도를 남긴 것도 아마 그 연장선상이 아닐까 싶다. 옛 그림이라서 다행이지만 성추행 사회적 이슈인 요즘이라면 화면 속 스님은 어떤 대가를 치렀을지 안 봐도 짐작이 간다. 노파와의 대거리 쯤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란 걱정스런 염려는 아마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