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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6.25 참상이 남김 이 땅의 '소년들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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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6.25 참상이 남김 이 땅의 '소년들의 초상'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6.25 0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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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억의 구두닦이 소년
이수억 作.  구두닦이 소년. 1952.

'슈사인 보이'.

6.25 전쟁 당시 주둔한 미군들이 구두닦이 소년을 그렇게 불렀다. 구두 통을 메고 ‘구두 닦어!’를 외치며 거리를 헤매는 왜소한 체구의 소년은 그 시절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우울한 자화상이다. 요즘 시각으로는 상상이 안되겠지만 70여년 전 이 땅의 많은 청소년들은 이처럼 비참한 삶을 살았다.

이수억(1918-1990)은 '구두닦이 소년(1952)'을 통해 전후 한국사회 민낯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림을 보면 구두닦이 소년이 클로즈업 되어 있고 배경에는 거리풍경을 묘사했다. 검정 고무신에 구두 통을 어깨에 메고 한 손에는 구두 솔을 쥐고 있다. 까까머리에 허름한 옷차림, 무표정한 얼굴의 소년은 허기가 느껴지는 지 주린 배를 움켜진 채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눈은 휑하다 못해 초점이 없다.

화가는 당시 안타깝고 비참한 현실을 소년의 휑한 눈과 얼굴 표정을 통해 보려주려 했음이다.

시선을 소년의 뒤편 배경으로 옮기면 전후 비참한 생활상이 그대로 읽혀진다. 한쪽 다리를 잃어 목발을 짚고 가는 사내, 그 옆에는 행상을 나온 소녀, 미군의 군화를 닦고 있는 슈사인 보이 등 사진처럼 사실적이다. 미군 뒤에 짙은 화장을 하고 선그라스를 낀 여자들이 서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양공주'라 불렀다. 구두닦이 소년에 버금가는 전후 사회의 아픈 생채기였다.

전후 폐허가 된 도시에는 소년을 중심으로 극단의 풍경이 공존하고 있다. 서로 다른 듯 하지만 전쟁이 빚어낸 불변의 결과였고, 피해 갈수 없는 현실이었다. 당시 서울·대전 등 미군이 주둔해 있던 도시의 거리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속 소년은 이미 고인이 됐던지 살아있다면 여든을 넘겼을 것이다. 그림속 군상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실이 오늘의 부족함 없는 대한민국의 만들었을 것이다. 70여년 전 ‘구두닦이 소년’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우리 사회는 덜 야박하고 정국은 이렇게 꼬이고 분탕질 치듯 싸움장으로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25 73주년 아침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너무 잊고 사는 것 같아 이 그림을 소개해 봤다.

이수억은 함남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북한에서 미술활동을 하다 6.25 때 월남했다. 월남 후 종군화가로 활동했다. 때문에 전쟁 후 한국사회의 실상을 보다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을 것이다. 1990년 고인이 될때까지 활발한 작업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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