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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죽비소리 같은 달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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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죽비소리 같은 달마도'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5.27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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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 作 달마도
김명국의 달마도. 17세기 종이에 수묵, 83×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소재를 풍성하게 한 주인공 하면 달마대사 만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불교와 관련된 인물 중에서는 아마 달마가 단연 으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달마도는 주위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달마도 중 백미는 조선 인조때 화원 김명국(1600-62)이 그린 달마도가 백미다. 그는 애주가이자 호주가다. 술이 예술의 젖줄이란 말이 있듯이 그는 술이 없으면 붓을 잡지 않았다.

술이 자력으로 예술을 창조할 수 없지만 예술가의 붓을 빌리면 불후의 명작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는 김명국과 딱 어울리는 얘기다.

물론 김명국을 전후로 술을 가까이한 예술가는 부지기 수다. 술이 예술의 원천이 되고 예술 동네 얘기를 한결 풍요롭게 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실일 것이다.

김명국의 그림 안팎이 온통 술이었다. 술이 있어야 먹을 갈고 취하지 않으면 아예 붓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 취필(醉筆)을 휘두른 탓에 그의 작품마다 주향(酒香)이 물씬 배어 있다. 달마도도 그 범주에 속한다. 오죽하면 연담(蓮潭)이란 호를 놔두고 취한 늙은이란 취옹(醉翁)을 썼을까.

달마도는 벼락같이 일순간에 완성된 작품이다. 취옹은 가는 붓에 담묵을 먹여 매부리코와 구레나룻, 부릅뜬 듯한 눈과 눈썹을 완성한 후 굵은 붓으로 바꿔 잡더니 농묵을 듬뿍 묻혀 질풍처럼 붓을 이리 찍고 저리 휘갈겨 가사(袈裟)를 입은 몸통과 그리고 두포를 마무리하자 비로소 달마가 호방한 모습을 드러낸다. 한마디로 신필이다. 

취옹은 이날도 취흥(醉興)에 젖어 마치 일필휘지로 붓글씨 쓰듯 열댓 번 남짓 빠른 붓놀림 끝에 달마상을 완성시킨 것이다. 극도로 절제된 운필과 묵선, 여백은 달마의 내면의 깊이를 더해준다.

인도 스님 달마는 부처의 심법을 전수받은 마하가섭 이래 인도선 28대 조사였는데 서기 520년경 중국 소림사에 머물면서 선종을 전파, 중국선 1대 조사가 됐다. 9년 면벽 수행을 해 그때부터 그는 선의 대명사가 됐다.

달마는 김명국 이전에도 있었지만 ‘김명국 달마도’만큼 호쾌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국적인 풍모와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정면상이 아닌데도 맹렬한 끌림에 곁눈질조차 용납지 않는다. 고승의 고매한 기상과 번쩍이는 안광이 관람자를 압도한다.

눈을 부릅뜬 채 안광을 뿜으며 세상을 향해 일갈하는 죽비소리같은 형상이다. 아마 그것이 선의 실체인 모양이다.

김명국은 화가라는 천한 신분을 비관해 말술을 마신 후 세상사 불만을 붓을 통해 표출한 일면도 없지 않다. 달마도는 또 다른 김명국일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산수 인물도와 노승도, 지옥도 등 선화에 뛰어났고 그것이 김명국 예술의 본령이다. 술 탓인지 현존하는 작품 30여점 중 걸작과 타작이 뒤섞여 있어 평가가 엇갈리는 점이 아쉽다.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 선종의 상징인 달마와 곡차를 즐겼던 달마도의 작가 연담 김명국을 소개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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