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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친구 구상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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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친구 구상의 가족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3.31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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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作 '친구 구상의 가족'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사랑` 절절하게 묻어나
아들에게 사주기로 약속한 자전거 못 사준 애틋한 마음도 담겨
친구 구상의 가족. 1955. 32×49.5cm

이중섭(1916-1956) 화백 하면 으레 소 그림을 떠올린다.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까지 역동적 이미지의 황소와 흰소가 각인된 탓일 게다. 하지만 이중섭은 가족과 사랑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훨씬 많이 남겼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그림 말이다. 

‘친구 구상의 가족(1955)’도 그중의 하나다. 죽기 1년 전 절친인 구상 시인에게 ‘가족사진’이라며 그려준 그림이다.

이중섭은 1954년부터 1년 반 정도 왜관의 구 시인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처가로 보낸 후 허전함에 지쳐 있을 때 구 시인이 아들에게 세발자전거를 사다 주던 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발자전거를 타면서 고개를 돌려 아빠인 구 시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은 행복 그 자체다. 손을 감싸 잡고 이를 지켜보는 구 시인의 아내와 딸인듯 한 소녀의 얼굴에도 흡족하하고 넉넉한 미소가 번진다. 그림의 시간적 배경이 6·25 전쟁 직후인데도 곤궁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반면 이를 지켜보는 이중섭의 표정은 대조적이다. 얼굴에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득하다. 초점 없이 휑한 눈빛도 그렇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다. 경직된 자세에 어울리지 않게 뻗은 팔은 게면쩍은 듯 힘이 없어 보인다. 일본에 있는 아내와 두 아들의 환영이 세발자전거를 타는 친구의 아들 머리 위로 아른거리는 것은 아닌지 영 부자연스럽다.

비록 자신의 처지는 아들에게 세발자전거를 사주지는 못하지만 행복감을 만끽하는 친구의 가족을 향한 축복의 마음은 넉넉하다. 화가 자신을 제외하고는 화폭 전체에서 행복감이 넘쳐난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행복한 친구 가족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붓을 놀렸을 것이다. 그림을 곱씹어 뜯어볼수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색조는 밝은 편이지만 화폭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다. 인물 표정은 봄빛 만큼이나 청명하지만 평상에 앉아있는 중년의 이중섭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작은 그림이지만 양면적 요소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세발 자전거를 사주지 못한 불편한 마음이 오죽 부럽고 가슴이 아팠을까. 그래서 화가는 작은 종이에 황톳빛 톤의 물감을 엷게 칠한 후 무심하게 반복해서 연필 자국을 낸 것은 아닐는지. 그 검은 선이 날카롭게 보일 정도다. 

자신에 대한 속절없는 화풀이 겸해서 말이다. 이 그림을 볼수록 가슴이 짠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근대 화단의 대표적 존재다. 일본 미술 유학 중 같은 학교 일본인 여학생을 만나 결혼했으나 전쟁 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내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화가는 유랑생활을 하다가 정신분열 증세와 영양실조, 간염으로 고통받다가 이른 나이인 40세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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