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풍차' 쓴 선비와 맨발동자는 무얼 찾고 있나...
상태바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풍차' 쓴 선비와 맨발동자는 무얼 찾고 있나...
  • 변상섭 기자
  • 승인 2023.03.03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명국 탐매도. 17세기 중엽. 31.6 ×45.7
김명국 작 탐매도

매화는 송죽(松竹)과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다. 동지 섣달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설중매를 기우(奇友), 봄에 피는 매화는 고우(古友)라 했다. 옛 선비들은 눈밭을 헤치며 탐매의 고행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설중군자(雪中君子)란 말이 달리 나왔겠나.
엄동설한을 견디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한다. 그래서 선비는 고매한 매화의 절개와 지조를 늘 닮고 싶어 했다. 매화를 선비의 벗이라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밤에는 물을 얼려 얼음 등을 만들어 매화 꽃을 감상하고 시를 짓는 모임이 유행하기도 했다. 시심을 남겨 집에 돌아와서는 그 여운을 즐기기 위해 탐매도를 그렸다. 매화를 그리지 않은 선비화가가 없을 정도였다.

연담(蓮潭) 김명국(1600-?)의 탐매도(17세기 중엽)도 유난스런 매화 사랑의 결과물이다. 하늘이 어두운 걸 보니 날이 채 밝지 않은 새벽녘이다. 선비는 방한모인 풍차를 쓰고 동자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쌀쌀한 모양이다. 
추워 어쩔 줄을 모른채 웅크린 동자와 달리 선비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다. 지팡이를 짚고 서서 나뭇가지에 눈송이처럼 매달린 매화꽃 감상에 빠져 있다. 꽃에 홀리고 향기에 취한 듯 달관한 표정이다.
매화 감상에 관심이 없는 동자는 추운 날씨 탓을 하는 표정이다. 매화음에 필요한 술과 음식, 시를 짓기 위한 지필묵 보따리를 가슴에 품은 채 엉거주춤한 거동이다. 입으로는 볼멘소리를 하는 듯하다. 짚신에 맨발이니 오죽하겠는가. 
느긋한 모습의 선비와 대조적인 심리묘사가 일품이다. 매화는 성리학의 이념과 고결한 선비의 덕성을 은유하고 있다. 눈길을 마다 않고 나서는 탐매의 길은 자아를 찾는 즐거운 고행길이다. 매화를 통해 봄을 맞는 것은 선비들의 고고한 품격을 지키는 생활의 단면이자 자기 수양의 방법인 것이다.

때문에 매년 정월이 지나면 눈길 뚫고 걷거나 나귀를 타고 빙자옥질(氷姿玉質· 얼음같이 투명하고 옥같이 뛰어난 자태)의 가인, 매화를 찾기 위해 주저없이 길을 나선다.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 삼아 산다는 매학처자(梅鶴妻子)란 말이 왜 나왔겠나.

탐매도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에서 연유한다. 이른 봄 매화꽃 필 무렵이면 매화를 찾아 눈 덮인 산속을 헤맸다는 설중탐매의 고사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다. 매화음(梅花飮)에 필요한 음식과 술 그리고 시를 짓기 위한 문방구 등을 담은 보따리를 들고 따르는 시동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다. 
김명국도 이 고사를 근거 삼아 탐매도를 그린 것이다. 심사정을 비롯해 옛 선비 화가들이 이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림은 거친 필치로 빠르게 그렸다. 농묵과 담묵이 조화를 이뤄 서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연담은 도화서 교수를 지낸 화원이다.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해 술이 취하지 않으면 붓을 들지 않았다. 성격대로 거칠고 호방한 필치를 구사해 당대에 신필(神筆)이란 찬사를 받기도 했다. 전하는 그림 대부분이 취필(醉筆)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정도다.


봄기운이 완연하다. 봄을 맞아 겨울의 잔영을 씻기 위한 탐매 나들이를 나서는 것도 좋을 듯싶다. 코로나19로 3년이 넘도록 나들이는 고사하고 외출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가. 매화를 핑계삼아 코로나로 찌든 묵은 때를 말끔하게 씻어내면 어떨까 한다.

벌써 남도에서 꽃소식이 전해오고 있지 않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