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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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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산다는 것은…
  • 박종훈(대전성모병원 원목실장)
  • 승인 2013.06.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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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윽~스윽~슥"

어느 날 사무실에 들어서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다름 아니라, 프린터로 기차 승차권이 출력되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너무나 놀라서, 저는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우와! 아니, 어떻게 기차 승차권이 프린터에서 나와요?"

그런데 더욱 놀라운 광경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저의 반응을 본 모든 분들이 갑자기 키득키득 웃으시는 겁니다. 상황을 보아하니, 승차권이 프린터로 출력된다는 사실을 저만 모르고 있었던 듯싶습니다. 이어서 제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 시켜 주는 한마디 말이 들려왔습니다. "신부님, 요즘은 이렇게 다 되요."

사실 그렇습니다. 저는 컴맹입니다.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주문해 본적도 없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 본적도 없고 인터넷 뱅킹이나 메신저 상에서 대화를 해본적도 없습니다. 영화나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아니 사실은 할 줄을 모릅니다. 한 번도 도전해 본적이 없으니까요. 그런 저에게 컴퓨터는 성능 좋은 타자기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컴퓨터뿐만이 아닙니다. 요즘은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 어린이들도 휴대폰을 갖고 있다는데,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휴대폰을 장만한 것이 스물아홉 살 때였습니다. 그것도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저에게 있어서 휴대폰은 정말 말 그대로 통화가 가능한 기기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전화 걸고 받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2009년도에서 2010년 사이에 휴대전화 업계에서 혁명과 같은 발전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스마트폰의 개발입니다. 스마트 폰은 개발과 함께 초미의 관심을 이끌어 냈고, 출시와 더불어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저 역시 그 바람에 합류하여 2010년 9월경, S사의 스마트 폰을 구입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스마트 폰 역시 저에게는 그냥 고가의 전화기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다양한 기능을 가진 스마트 폰을 가지고도, 그저 전화를 걸고 받는 전화기의 원초적 기능만을 충실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은 근래에 와서는 문자를 주고받는 기능을 사용한다는 겁니다.

스마트 폰은 휴대전화이며 동시에 손 안에 든 컴퓨터입니다. 그래서 스마트 폰이 있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만 가능했던 모든 것들을 손 안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변해가고 있고 앞으로도 변해 갈 것입니다. 더욱더 빠른 속도로, 그리고 더욱더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세상을 한마디로 집약하는 언어가 ‘디지털 시대’라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디지털 시대는 과거의 아날로그 방식을 모두 바꾸어 놓았습니다. 매표소에 가지 않고도 승차권을 손에 쥘 수 있게 만들었고, 은행에 가지 않고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으며, 서점에 가지 않고도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굳이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최신 개봉작을 관람할 수 있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원하는 대로 골라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제품은 무엇이든, 그것도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편리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반면, 편리가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입니다. 무엇을 하든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게 불편하고 시간이 든다는 게 그것도 아주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게 불편하고 일일이 사람 손이 가야 한다는 게 불편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더 아날로그를 지양하고 디지털을 지향합니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가 안쓰러워서일까요? 제가 컴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가끔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세대는 디지털 세대인데 사는 모습은 완전히 아날로그냐?"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런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편리를 지향하는 디지털 시대가 간과하는 아날로그 시대의 진면목이 하나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사람 사는 맛’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하려고 표를 사기 위해서 몇 십 미터 혹은 몇 백 미터씩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즐겁게 기다릴 줄 아는 여유로움, 덜컹 거리는 기차에 서로 몸이 맞닿을 만큼 많은 사람이 타고 있으면서도 서로 양보할 줄 아는 아름다움, 원하는 제품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흥정을 하고 합의점을 찾는데서 오는 정겨움… 이 모든 것들이 아날로그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람 사는 맛’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날로그를 고수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앞으로도 세상은 점점 더 디지털화 되어 갈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시대가 점점 변하여 먼 훗날에는 디지털이라는 이름 대신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시대가 도래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세상이 그렇게 변한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세상도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사람 사는 세상이니만큼 그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 사는 맛’이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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