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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왜 요즘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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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왜 요즘 문제인가?
  • 석길암(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 승인 2013.07.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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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스마트폰 친구삼아 크는 아이들

이미지·소리 과잉, 마음 온전할 수 없어

두 번에 걸쳐서 한 박자의 여유가 있는 삶의 필요성, 아니 한 박자의 여유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막상 그 한 박자의 여유를 일상에서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그 한 박자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잡념(雜念), 흔히 말하는 산만함이다. 둘은 건강하지 못한 몸, 다 알다시피 몸이 아프면 역시 산만하다. 곧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이른바 몸과 마음의 양쪽이 다 건강해야만 산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요즘 부모들이 제일 걱정하고 당황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이른바 ADHD라고 알려진 심리와 행동에 있어서의 장애이다. 심리적으로 주의력 곧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주의를 돌리는 심리 경향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심리적 양상, 곧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여 관심의 대상을 끊임없이 바꾸기 때문에 행동 역시 그에 따라서 과잉하게 되는 경향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른바 주의력 부족이다. 행동 과잉이라는 것 역시 행동에 일관성 혹은 집중성은 없으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두서없는 행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러한 장애는 특히 아이들에게 문제가 된다.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창 성장과정에 있기 때문에, 잘못된 마음의 습관과 육체의 습관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양상은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성인(成人)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되는 장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 양상은 대부분 심리적 불안과 깊은 연관이 있다.

최근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장애이기는 하지만, 옛날에도 존재했던 장애이기도 하다. 다만 아이 키우기에 관심이 많은 요즘 부모의 아이들에 대한 좀 더 많은 관심이 발견해낸 장애일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요즘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선천적 원인을 제외하면, 후천적 원인 곧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후천적 원인 곧 환경에 있어서 어떤 것이 다를까? 그 중에서도 우리가 제일 주목해야 할 것은 보고 듣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심리적 경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하고 도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선 보는 것, 단순히 60~70년대 한국사회와 4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사회를 비교해보자.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것으로 텔레비전이 있다. 한 마을에 한 대가 있을까 말까 하던 텔레비전이 이제는 가정 필수품이던 시절을 지나, 한 방에 한 대씩 있는 시대가 되었다. 텔레비전을 친구 삼아 자라는 아이들, 곧 텔레비전이 아이들을 키우는 시대가 되었고 홀로 된 노인들은 텔레비전을 배우자 삼아 하루를 소일하는 시대가 되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한국의 아줌마들은 대화의 주제에서 소외되고, ‘개콘’을 보지 않으면 한국의 아이들은 유행에 뒤떨어진 아이가 된다. 아이들을 기준으로 말하면, 유치원 가고 학교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텔레비전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같은 텔레비전이라고 해서 60년대 텔레비전과 2010년대 텔레비전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우선 단순한 흑백의 모노톤은 일찌감치 사라져 버렸고, 같은 텔레비전이라도 총천연색의 선명한 고화질 컬러 영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거기까지만 해도 좀 나을 텐데. 그 총천연색 영상을 현란한 광고가 자리를 차지하고 휘두른다. 광고가 없으면, 드라마도 없고 ‘개콘’도 없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광고는 그 지향성이 명확하다. 자극하는 것이 광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광고는 끊임없이 그 광고를 보는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고 부추긴다. 그래야 구매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는 경쟁이다. 경쟁에서는 더 강한 자극 혹은 더 강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쪽이 이기기 마련이다. 광고가 시간이 갈수록 더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영상매체는 정보의 창구라는 기본적인 기능보다는 심리의 자극이라는 부수적 기능이 훨씬 더 우위에 서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런 시대에 텔레비전이 키우는 아이들, 그런 시대에 텔레비전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주부나 노인들에게서 주의력 결핍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다음 듣는 것, 듣는 것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4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아마도 축음기나 라디오 혹은 소니 워크맨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0대 이하라면? 아무도 그런 구시대 유물은 떠올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아, 워크맨’ 해주면 다행일 것이다. 엠피쓰리와 스마트폰을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는 세대에게 있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언제든 듣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휴대폰을 지나서 우리에게 다가온 스마트폰은 더욱 그렇다. 끊임없이 음원에 노출되어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을 포함하여 20대의 상당수가 청각과 관련된 병증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거기에 언제, 어디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지는 휴대폰의 벨소리와 전화 통화 소리가 온통 주변을 시끄럽게 만드는 시대를 우리는 애달프게 살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공공장소에 가장 먼저 눈에 뒤는 표시나 안내가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꾸어 달라는 것이겠는가.

이처럼 우리는 보고 듣는 것이 과잉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과잉이다 보니, 당연히 보고 듣고 반응하는 마음의 상태가 온전할 리 없는 것이다. 역으로 보고 듣는 것의 자극이 멈추는 순간 현대를 사는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불안해진다. 보고 듣는 것이 멈추는 순간 편안해져서 쉴 수 있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이것이 휴대폰과 텔레비전으로부터 강제적으로 떼어놓는 산간 큰 절의 템플스테이가 유행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벌써 2500년 이전에 마음의 산만함에 대해 부처님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산만한 잡념은 가치 없는 것, 산만한 잡념은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하찮은 것. 하지만 그것은 마음을 거만하게 만들고, 마음은 그것에 이끌려 다닌다. 이러한 마음의 산만한 잡념에 묶여 어리석은 이는 들뜬 마음으로 이 세상, 저 세상을 헤매고 다닌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산만한 잡념에 대해 환히 아는 자는 올바른 생각으로 열심히 자기를 다스린다. 부처란 마음을 거만하게 만들어 마음을 끌고 다니는 산만한 잡념을 남김없이 버린 사람이다."(<우다나>중에서)

마음을 거만하게 만들고,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 것들이, 휴식을 취해야 할 ‘마음’을 여기저기로 쉴 새 없이 이끌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부처님은 말한다.

"이러한 마음의 산만한 잡념에 대해 환히 아는 자는 올바른 생각으로 열심히 자기를 다스린다."

보고 듣는 것의 자극이 훨씬 약했던 부처님의 시대에도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생각으로 열심히 다스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해진다. 이제 보는 것을 멈추고 듣는 것을 멈추는 연습을 시작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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