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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상영가‘자가당착’개봉을 고대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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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상영가‘자가당착’개봉을 고대하는 사람들
  • 송길룡
  • 승인 2016.05.26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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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3일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호프집 한쪽 테이블. 오로지 <자가당착>이라는 영화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 왁자지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2011년 6월, 2012년 9월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이후 이 영화의 연출자인 김선 감독은 2012년 11월1일 서울행정법원에 <자가당착> 제한상영가 취소 행정소송을 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13년 5월 그 영화의 제한상영가 등급이 부당하다는 원고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맥주 파티는 그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 자가당착 행정소송 승소 기념 파티

김선 감독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여들자 그간 행정소송의 경과를 이야기하면서 영등위가 항소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관행을 비추어볼 때 법정공방이 장기화되어 <자가당착>의 개봉은 훨씬 더 나중에나 가야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하는 김선 감독의 표정은 전혀 위축돼 보이지 않았다. 덤빌테면 덤벼라 다 맞붙어줄테니 하며 호기를 다지는 레슬링 선수 같은 파이팅도 엿보였다. 어쩌면 응원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술기운에 쉽게 달아오른 의지를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내 눈에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모습은 그의 영화처럼 유쾌하고 예리하고 대범했다.

나는 <자가당착> 개봉 및 소송지원을 위한 후원모금에 약소한 금액을 후원함으로써 이번 맥주 파티에 초대를 받아 찾아가게 됐다.(예의상 그런 표현을 했지만 솔직히 내 형편에 그리 ‘약소한’ 금액은 아니었다!)
조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을 다녀오는 수고를 마다 않고 모임에 합류한 것인데 멀리서 응원하며 늘 관련소식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여기고 있던 마당에 도대체 <자가당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지 궁금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 자가당착의 포돌이 캐릭터

예상한바 그대로 정말 생전 처음 보는 파릇파릇 20~30대 젊은 세대들과 너무나 낯설어서 눈길 두기조차 어색해지는 술자리를 함께하며 나는 적잖이 분위기 적응하느라 남몰래 속을 태웠다. 거기 모여든 사람들 모습을 기념으로 사진에 담는 일도 겨우 틈을 보아 해냈다. 이름까지는 다 받아 적을 수 없었으니 대강 그 자리에서 소개된 내용을 토대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였는지 읊어보기로 한다.

국내 독립영화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일하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실무자들. 작년까지 무려 38회째 연례 영화제를 개최해온 서울독립영화제 실무자들. 물론 두 말할 필요 없이 <자가당착> 제작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 제한상영가 등급판정에 대해 항의하는 뜻으로 영등위 건물 앞에서 벌인 퍼포먼스의 주인공들. 이 퍼포먼스는 <자가당착> 속 주요 캐릭터인 포돌이 인형과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쥐인간 인형을 이용해서 이뤄졌는데 젊은 연극배우들이 담당했다.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판정사례들을 들어 그 부당성과 문제점들을 들춰내며 지원사격을 해준, 타이틀을 알 수 없는 인터넷 팟캐스트 토크쇼 진행자들. 모임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뒤늦게 합류한 영화주간지 <씨네21> 기자들. 후원모금에 참여한 후원자들. 그밖에 나로서는 정체를 알 길 없었던 매우 용기 있고 당당한 모습의 젊은이들까지….

개봉에 이르는 과정에서 남다른 고초도 겪고 관심도 받으며 영화 부문에서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확대되어왔는지 직접 체험해가는 <자가당착>의 창작자들과 지지자들. 영화만큼이나 각자의 마음에 튼튼한 의기를 북돋워주는 사람들의 끈끈하면서도 뜨거운, 독립영화에 대한 열기. 낯설어하던 나도 깜빡 한통속이 돼서 웃고 떠들게 됐다. 나름대로 은근슬쩍 내가 젊어진 듯 착각에도 빠졌었다. 진심을 말하자면 난 영화에 대한 그런 젊음이 너무나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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