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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무성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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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무성영화를 보며 느끼는 감동
  • 송길룡
  • 승인 2013.05.13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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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노트


주변사람들에게 꼭 한 번은 소개하고 싶었던 고전영화가 있었다. 덴마크 출신의 위대한 영화예술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무성영화 걸작 <잔다르크의 수난>(1928)이 그것. 하지만 여러 영화 관련 만남들이 있었어도 좀처럼 함께 관람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아니 그 영화에 대해 얘기를 꺼낼 만한 기회조차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늘 상 꺼내는 영화 얘기는 최신 개봉영화들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고전영화? 어림 턱도 없다. 불과 1개월 전에 개봉한 영화들의 제목을 꺼내는 것조차 뭔가 시류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듯 눈총을 받는다. 지난 두어 달 그토록 뜨거운 관람의 열기를 발산했던 <지슬>을 지금도 떠올리며 뒤늦은 감상평을 읊조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영화들이 빠르게 관객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간다. 일주일 단위로 십여 편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에 스치듯 지나간 몇 달 전 영화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얘깃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영화관 앞에 서성대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매주 달라지는 영화 포스터들을 보며 참으로 다채롭고 다양한 영화세상에서 선택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뒤흔든 운명 같은 영화의 기억은 과연 얼마나 될까? 영화를 보며 무엇이 삶을 풍성하게 하는지 따져보는 일은 일단 관객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좋다고 강요할 시대는 아니니까.

하여간 <잔다르크의 수난>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세종참여연대 영화소모임 회원들이 옹기종기 모여든 가운데 영화의 역사 초창기 무슨 대단한 미적 성취가 있었겠는가 싶은 저 먼 옛날 1920년대 구닥다리 영화가 펼쳐지는 스크린에 눈길이 모아졌다.

이 영화를 추천한 나는 애초에 작지 않은 망설임이 있었다. 총천연색에 3D에 게다가 화려하고 환상적인 CG화면에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빵빵하게 뒷받침되는 최첨단 기술집약적인 영화산업의 현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 시대의 평범한 관객들이 시대를 거스르고 문명을 거슬러 영화 역사의 시작을 알리던 흑백무성영화를 과연 감명 깊게 관람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나는 <잔다르크의 수난>을 통해 현대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값진 희열을 맛보기는 했지만 그런 감흥이 항상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상영이 끝난 후 기탄없이 터져 나온 박수소리. 더 이상 어떤 말로도 표현할 길 없이 그저 묵묵히 지어내는 감동어린 표정의 침묵.

<잔다르크의 수난>을 이제 처음 체험한 이들에게 그 시간은 아마도 이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 백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앞에 여보란 듯 힘차게 펼쳐지는 흑백화면의 굳건함, 그 속에서 침묵을 뛰어넘는 영상미로 시선을 압도하며 보여주는 무성화면의 진실함, 그리고 다채롭고 풍성한 얼굴표정들의 향연에 한껏 취해버린 관객들의 뜨겁고 깊은 영혼의 숨소리.

고전영화에 대한 걱정은 더 이상 안 해도 될 것 같다. 오히려 이제는 영화가 긴 세월 단단히 새겨놓은 걸작들을 폭넓게 더 자주 선보일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 절실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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