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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형적 유통구조가 만들어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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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형적 유통구조가 만들어낸 괴물
  • 김재중
  • 승인 2013.05.13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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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저질먹거리, 그들만의 문제일까?


최근 중국 사법당국이 하수구 식용유 등 저질 먹거리 생산·유통업자에게 최고 사형까지 내릴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중국산 저질 먹거리가 근절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산 먹거리가 대량으로 수입·유통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인들도 이번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로 들여오는 중국산 저질먹거리의 생산과 유통, 분배 등에 한국인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치다. 지난 2005년 가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됐다는 식약청 발표로 한국사회가 온통 시끄러웠다. 이른바 ‘중국산 김치파동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기자는 당시 중국 내 최대 김치 생산지역인 산둥성 현지취재를 통해 김치파동의 원인이 한국 유통업자의 농간 때문이라는 점을 보도한 바 있다.

불량김치 탄생의 메커니즘

당시 산둥성 현지취재를 통해 만난 취재원들 중 열에 아홉은 김치파동의 원인을 "한국의 기형적 유통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서도 한국의 식약청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이라는 기관이 존재하고, 이 기관의 승인을 받은 업체만 가공식품을 수출할 수 있다. 질검총국의 허가규정은 꽤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HACCP’라는 국제규정을 적용해 조금이라도 기준을 벗어날 경우 즉각 제재를 가하고 있다.

산둥성에서 김치가공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질검총국의 허가과정을 경험했던 현지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볼트 하나까지 살펴볼 정도로 까다롭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중국산 김치파동은 중국 질검총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허가 업체로부터 비롯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허가 업체들이 만든 김치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의 식당에서 유통되는 것일까. 물론 이 대목에서만큼은 중국 당국의 관리감독 소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개의 무허가 업체들은 한국으로 향하는 컨테이너에 자신들이 만든 김치를 싣기 위해서는 질검총국의 허가를 받은 다른 중국 현지 업체의 이름을 빌린다. 가짜 서류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거래엔 약간의 수수료가 붙는다. 업계의 오랜 관행이라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의 통관업무가 남았다. 이 과정에서는 관세사의 역할이 빛을 발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관세사는 수출입 업무를 대행해 주는 전문가로 화주(물건의 주인)가 해야 할 통관 업무를 대행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관세사의 능력은 물건을 얼마나 빨리 통관시켜 주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며 "관세사와 세관 직원들과의 친분 관계가 통관속도를 크게 좌우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인이 수입한 중국산 김치는 이후 국내 유통망을 통해 단체급식소와 식당 등으로 부리나케 팔려 나가게 되는 것이다.

‘왜 만들어질까’는 무관심

재외국민의 현지 활동을 돕는 해외공관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칭다오시 총영사관 관계자는 "자체적 민간 모임인 상공인회에 등록하지 않은 업체들은 솔직히 파악할 방법이 없다"며 "산둥성 일대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김치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 업체의 명단조차 정확하게 확인할 길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중국산 먹거리 문제에 대해 온 나라가 뒤흔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국내 한 종합편성채널이 중국 현지취재를 통해 국내로 수입되는 배추에 포르말린이 뿌려지고 있다는 점을 고발해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보도의 반향은 컸지만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접근은 없었다. 저질먹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자극적 보도만 앞세울 뿐, 왜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는 셈이다.

기자는 지난 2005년 중국 산둥성 현지에서 만난 왕시우동 삼송식품 사장의 이야기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산 저질먹거리가 ‘왜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을 던져준 바 있다.

"한국의 유통업자들은 오로지 싼 김치만 찾고 있다. 때문에 생산업자들이 이득을 위해 재료를 가리지 않고 쓰는 것이다. 반면 일본 바이어들은 김치의 가격보다는 질을 높게 따진다. 제 가격 받고 좋은 제품 만들어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것이 더 낫다. 한국 사람과 거래하고 싶지 않다."

중국산 저질 먹거리가 문제냐 한국의 유통구조가 더 문제냐는 이분법적 논란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보다 어렵다. 다만 우리가 내부문제에 대해 자성하지 않고 원인을 밖에서만 찾고 비난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이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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