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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맛이 그리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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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손맛이 그리운 계절
  • 박종훈(대전성모병원 원목 실장)
  • 승인 2013.05.13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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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렇게 누가 묻는다면…
사람마다 각자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소풍 하면, 제일 먼저 김밥이 떠오릅니다.
산과 들이 울긋불긋한 꽃으로 온통 물들어가는 5월 그리고 가을걷이를 앞두고 들녘이 온통 노랗게 물들어가는 10월. 내리쬐는 햇빛이 싱그럽고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한 가장 좋은 날을 정해서 해마다 두 차례씩 소풍을 가곤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이렇게 봄, 가을로 12 차례의 소풍이 있었지만 정작 소풍날 김밥을 싸가지고 간 기억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김밥 대신, 소시지 볶음, 멸치 볶음, 김치를 비롯해서 네다섯 가지의 반찬을 담아서 도시락을 싸주곤 하셨습니다.
소풍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가 김밥이라는 사실을 엄마가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밥을 싸주실 수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시골 농부에게 시집온 엄마의 삶은 말 그대로 아주 평범한 시골 아낙네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침상을 물리기 무섭게 논으로 밭으로 나가 일하셔야 했던 엄마에게 있어서 아침부터 가뜩이나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을 준비한다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전날 저녁에 김밥을 싸자니 밤사이에 딱딱하게 굳어질 것은 뻔하고, 그렇게 다 굳어 버리고 식은 김밥을 당신 자녀들에게 먹인다는 게 엄마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쉬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세상 그 어떤 엄마라도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엄마는 소풍날 아침, 김밥 대신 여러 가지의 반찬을 담은 도시락을 손에 들려주곤 하셨습니다.
그 같은 사정을 그때는 왜 그리도 몰랐을까요?
그래서 소풍날이 다가오면, "엄마, 이번 소풍 때 김밥 싸주시면 안 돼요?"라고 졸라대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엄마는 맨날 밥만 싸주시더라"며 볼멘소리를 하곤 했습니다. 철없는 아이의 투정이라고는 하지만 자녀가 원하는 것을 해 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물론 한 번도 표현하신 적은 없지만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처럼 철없는 말을 해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을 텐데’하는 후회가 마음 한편에 늘 자리를 잡습니다.
어릴 때와는 달리 요즘은 김밥을 먹기가 참으로 쉬워졌습니다. 굳이 소풍이나 야유회가 아니더라도, 또한 일일이 재료를 사다가 손을 대야하는 번거로움을 거치지 않더라도 김밥 전문점에서 손쉽게 김밥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문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종류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참치 김밥, 치즈 김밥, 김치 김밥, 샐러드 김밥, 누드 김밥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자신의 구미에 맞는 김밥을 손쉽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전문점 김밥과 달리 그 시절 엄마가 싸주신 김밥은 참으로 단순했습니다. 김밥에 들어가는 재료라고 해 봐야 단무지, 소시지, 계란 지단, 시금치, 당근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당시 집에서 농사를 짓던 오이가 그 안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것은 별다를 것 없는, 그렇게 단순한 ‘엄마 표 김밥’이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김밥 보다 훨씬 맛있다는 겁니다.
"별다를 것도 없고, 단순하기 짝이 없는 엄마의 김밥이 왜 가장 맛있는 김밥으로 기억되는 것일까?"를 고민하면서, 한 가지 답을 찾게 됐습니다.
답은 별다르지 않다는 제 생각도 틀렸고, 단순하다는 저의 생각도 틀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 김밥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별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단순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김밥 속에는 아주 특별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손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 그리고 손맛은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무이한 것입니다. 그러니 엄마의 김밥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김밥이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단 그것이 김밥뿐이겠습니까?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은 모두가 그렇습니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피었다 지고, 벚꽃이 피었다 지고, 철쭉과 아카시아 꽃이 피어나는 5월이 오면 아른거리며 올라오는 아지랑이처럼 어릴 적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엄마의 손맛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비록 엄마의 손맛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당신 자녀들에게 최고의 사랑과 정성과 맛을 담아 평생 밥을 지어주신 엄마에게 올 어버이날에는 나름대로의 사랑과 정성과 맛을 담아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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