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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천민제도’ 비정규직 철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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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천민제도’ 비정규직 철폐해야
  •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3.04.26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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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29세 청년의 자살
개정 파견법 시행 앞두고 경력 2년 이상 해고 편법
연간 7~10조원 이득불구 사회적 책임 방기
동반성장·경제민주화 지배층의 새빨간 거짓말 드러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일했던 사내하청 노동자 공 아무개 씨가 4월 14일 저녁 울산 남구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3년 1월말에 계약 만료가 된 뒤 실직한 상태였다. 실직한 지 두 달여 만에 자살한 셈이다. 일자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노동자들의 현실이니, 실직은 곧 자아 상실이었다. 얼마나 절망감이 심했을까? 아직 나이도 젊은 29세 청년, 자살이란 극도의 좌절감과 절망감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에겐 이 세상이 극도로 증오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2012년 7월부터 2013년 1월 말까지 꼬박 6개월 동안 엔진변속기 공장에서 촉탁계약직 신분으로 일했다. 그 이전에 그는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2013년 1월 말까지 그는 현대자동차에서 하청노동자 및 촉탁계약직으로 모두 2년 동안 일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에 따르면, 2012년 7월 현대차가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개정 파견법 시행을 앞두고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촉탁계약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유해놓고 모든 경력을 포함 2년이 넘은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했다. 공씨도 바로 그 편법의 피해자였다.

현대자동차는 두 번씩이나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존의 사내하청 노동관계가 불법 파견에 불과함이 명확히 드러났음에도 요지부동이다. 특히, 불법 파견에 해당하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함에도 법원에 제소한 소수의 당사자만 해당한다고 억지를 씀으로써 최병승씨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힘겨운 철탑 농성에 돌입하게 만들었다.

파견법이나 기간제법 등 노동법에 따르면 생산직 현장에는 노동자 파견이 불가하다. 게다가 기간제이건 파견제이건 비정규직으로 2년을 초과해 일을 시킨 경우엔 일하는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정식 고용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이라는 사회적 평판에 걸맞지 않게 법을 무시하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동반성장’이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것을 떠드는 것은 모두 위선이요 거짓말이다. 지배층이 그토록 강조하는 ‘트리클다운(trickle-down)’ 효과가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현대자동차가 해마다 7~1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이윤을 거두어들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목숨을 건 저항과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매년 3000억 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당기순이익의 4%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가진 자들은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끄덕도 없다. 참, 냉정한 사람들이요, 참 지독한 흡혈귀 자본이다.

누군가 그랬다. 위에 있는 그릇의 물이 흘러넘치면 자연히 아래의 그릇에도 물이 고이게 된다는 ‘트리클다운’ 효과가 현실에서 잘 실현되지 않는 까닭은 가장 위의 그릇이 너무나 넓고 깊거나 혹시 그릇이 다 차서 넘치려 하면 금세 다른 그릇으로 바꾸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의 공씨 자살 사건도 바로 이런 가진 자들의 야비함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우연찮게도 같은 시점에, 청소년 절반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자살 공화국’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 것인가? 더 이상의 자살을 막으려면, 아이들은 자유로이 꿈을 꾸며 자랄 수 있어야 하고 어른들은 노동의 의미와 재미를 찾으며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비정규직’이라는 현대판 천민 제도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 참된 균형 성장, 적정 분배, 독점 방지, 주체 조화 등, 헌법 119조의 경제 민주화를 일관성 있게 구현하는 일이 시급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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