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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도 공무원 되나?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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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도 공무원 되나? 되더라고요”
  • 천안=류재민 기자
  • 승인 2013.01.15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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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공무원 된 농고 출신 10대 한재현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동안은 완전 ‘멘붕’이었어요.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거든요."
새해 영농교육이 한창인 지난 10일 오전 천안시 농업기술센터 2층 대강당.
앳된 직원 한명이 교육장을 누비며 안내에 열심이다.
지난 해 11월 1일자로 천안시청 공무원이 된 농업기술센터 농촌지원과 한재현(농업 9급)씨다.
나이는 만 18세. '씨'라는 호칭이 어색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천안제일고(옛 천안농고) 3학년인 그는 다음 달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졸업도 하기 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이다.

약관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대학 진학도 않고,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유가 있나.
"작년 4월에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공무원 공채시험 공고를 봤어요. 처음엔 고등학생도 공무원을 뽑나 했죠. 게다가 워낙 경쟁률도 세다보니 어렵겠다 싶었어요. 당시에는 어느 대학을 갈 지 확신도 없었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던 때였어요. 그런 와중에 시험 공고가 났다는 얘길 들었어요. 독하게 마음먹고 달려들었죠. 학교에서 14명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4명 중에서 8명이 최종 합격했는데, 5명을 뽑는 농업직에는 저를 비롯해 3명이 붙었어요. 그 3명 중에 천안시로 발령받은 건 저 혼자고요. 농업기술센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분이 저랑 10살 차이에요. 거의 엄마, 아빠뻘이죠."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은 없나.
"MT도 다니고 싶고, CC(캠퍼스커플)도 하고 싶은데, 그런 걸 못 누려본다는 게 아쉽죠. 70일 정도 공직생활을 했는데 주변 분들의 격려와 도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적응하고 있는 중입니다."

공무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특별한 동기는 있었나.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그동안 사랑으로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께 효도를 해 드린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공무원에 붙으면 참 기뻐하시겠다 싶었죠. 합격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기뻐하시며 주변 아는 분들께 전화해서 자랑하시더라고요."

평소에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접한 사물놀이에 빠져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사물놀이패까지 만들고, 사회단체 활동까지 했어요. 하루라도 사물놀이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였지만,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준비를 하는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관광조리경영과에서 식품 관련 공부를 했는데 공무원 필기시험은 생물과 식량작물, 농업생산 환경 등 생소한 과목이고, 350페이지나 되는 교재를 받고 보니 ‘멘붕’ 상태였어요. 어떨 땐 '내가 이걸 왜 해야 하지'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반드시 합격한다는 신념을 갖고 교회에도 나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어요."

학교 성적은 어느 정도였나.
"중학교를 졸업할 때 소위 '빅 3(중앙고·북일고·천안고)' 고등학교를 갈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천안제일고를 선택했습니다. 1학년 때는 학급에서 1~2등을 다퉜지만, 사물놀이에 빠지면서 공부를 소홀히 했어요. 그러다보니 2·3학년 때는 중위권으로 처졌지요. 지금껏 한 번도 피 튀기게 공부 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시험만큼은 정말 죽기 살기로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어요. 책상 위에 명언들을 붙여 놓기도 하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까지 밤잠을 설쳤던 기억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농고에 대한 선입견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농고를 나왔어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잘하면 된다고 봐요. 중앙고나 북일고, 천안고를 간 친구들이 제가 공무원 된 거 보고 배 아파 하더라고요. 농고 갔는데 어떻게 공무원이 됐냐고 하면서요. 한 친구는 자기도 공무원에 도전해봐야겠다면서 시험과목도 묻더라고요. 학교에서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하지, 어느 학교를 다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공무원으로서 꿈이 있다면.
"시험보기 전에 부정부패 비리를 저지르는 공무원을 보고 '공무원이 이런 건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들어와 일을 해보니 그런 사람들은 극히 일부고, 열심히 일하고 친절한 공무원이 더 많은 걸 보면서 참 매력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가졌어요. 아직은 보람을 느낄만한 겨를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어요. 하지만 저는 시민들에게 '산소'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시민들에게 있어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처음처럼 일하다보면 제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예쁜 연예인을 좋아할 나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즐겨 듣는 음악이 있나.
"영화 <과속스캔들>에 나온 배우 박보영을 좋아해요. 음악은 장르불문이고요. 그저 ‘달달한’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자주 다투던 여동생에게 이제 오빠로 잘 챙겨주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중학교 때 게임에 빠져 밤늦게 들어가 속을 썩여 죄송하다는 말씀도 부모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부모님, 키워주셔서 고맙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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