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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힐 학교에서 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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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힐 학교에서 배우기
  • 강수돌 (고려대 교수)
  • 승인 2012.11.0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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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패러다임에 신선한 충격 준 서머힐스타일

서머힐 학교(summerhill school)는 원래 영국의 교육가인 A. S. 닐(1883-1973)이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혼란스럽던 독일에서 5명의 아이들과 함께 시작한 대안 학교(드레스덴 근교의 헬레라우 국제학교)다. 닐 자신도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중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직업 전선으로 간다. 그 뒤 아버지가 일하던 학교에서 교생으로 일하면서 뭔가 깨달은 바 있어 스물다섯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간다. 서른한 살에 지방 학교의 대리 교장으로 근무하면서 <교사일지>를 펴낸다. 이 무렵 그는 삶과 교육에 있어 ‘자유’의 문제에 관해 심층 고민을 한다. 그 실천적 결실이 1921년의 국제학교, 그리고 1924년의 서머힐 학교다. 결국, 대안교육 아이디어란 규율과 주입식, 시험과 노동력 양성 등으로 구성된 공립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비롯된 셈이다.

공교육 패러다임에 신선한 충격 준 서머힐스타일

그 뒤 약 40년간의 실제 경험을 담은 <서머힐>이란 책이 1960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기존 공교육의 패러다임에 젖어 있던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언론이나 지식인 세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600여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될 정도였다. 일종의 ‘서머힐 스타일’이 강타했다. 그가 아흔 살에 세상을 뜬 이후에도 서머힐은 대안 교육의 모범으로 계속된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이 서머힐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숱하게 많은 관점이 있겠지만 간략히 10가지로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춘다. 보통은 아이들을 학교에 맞춘다. 아이들(대개 초등, 중등 수준)은 군인들처럼 복종하거나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 그래서 일반 학교는 규율이 엄격하고 상과 벌로 다스린다. 때로는 폭력도 용인된다. 그러나 서머힐은 교과과정이나 아이를 보는 눈을 아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교과과정은 ‘놀이’를 중시하고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웃는 이다. 학교 평가는 학업 성적이 아니라 아이들 표정을 보라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까닭이다.

둘째,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기 모습을 찾는다는 믿음이다. 처음엔 울적한 아이도 자유스런 분위기가 일관되게 유지된다면 스스로 자아와 접촉한다. 보통은 부모의 기대나 학교의 강압, 사회적 분위기가 아이를 짓누른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면이 공허해지고 방황한다. 줏대가 없고 목표가 없으니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서머힐 아이들은 어디에 가건 중심이 잡혀 있다.

행복하게 자라야 멋지게 산다

셋째, 행복하게 자라야 멋지게 산다는 가르침이다. 그렇다. 가정에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내면이 평화롭고 자아존중감이 높으며 주변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서머힐은 가정에서 결핍된 사랑을 듬뿍 준다. 심지어 도둑질을 한 아이에게 닐 교장은 동전을 주면서 뭔가 필요한 것이 있느냐며 다독거린다. 아이를 존중하고 인정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 아이는 도둑질을 않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아이를 존중하고 행복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나름의 멋진 인생을 꾸릴 수 있게 된다.

넷째, 아이들의 이기심은 오히려 아이다운 면모로 여겨진다. 엄마의 뱃속을 나온 아이는 어른들의 절대적 보살핌 없이는 생존이 어렵다.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하다. 아이가 자연스런 욕구가 어른 눈에는 이기심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조건 없는 사랑으로 충족되면 아이는 안정감을 찾고 주변을 배려하는 이타심도 발현된다. 결국, 이기심이나 이타심은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이기적인 아이를 이기적이라고 나무라기 이전에 아이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에 적절히 부응하면 아이는 이타적으로 된다.

놀이를 중시하고 인생관을 정립하는 교육

다섯째, 서머힐은 놀이를 중시한다. 어른의 눈에 놀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수능 성적 1점이 당신의 장래를 좌우한다."는 구호는 서머힐에선 볼 수 없다. 놀이는 창의력과 협동심을 배우는 기회다. 놀이는 아이들 내면의 생명력을 발산하는 통로다. 놀이와 유머는 삶을 재미있게 만듦으로써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어릴 적에 실컷 논 아이들이 커서도 뭐든지 자신감 있게 해낸다. 놀 줄 모르고 유머를 모르는 이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닐에 따르면 "사람들은 40대에 죽어서 80대에 묻힌다." 재미를 모르는 인생을 빗댄 철학적 유머다.

여섯째, 인생관이 정립되면 직업은 덜 중요하다. 대개 어릴 적에 읽는 위인전의 인물들은 학벌이나 학력이 보잘 것 없다. 그러나 투철한 발명정신이나 높은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이 위인을 만든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위인전의 인물을 본받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인생관 자체보다는 학벌과 직업을 중시한다. 그러나 서머힐에서는 버스 안내원이건 벽돌공이건 농부이건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찾으며 일하는 것을 중시한다. 인성 교육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일곱째, 스스로 할 때까지 믿고 기다린다. 어른이건 아이건 내면엔 여러 가지 상처가 있다. 이 상처를 솔직히 인정하고 서로 사랑으로 어루만져주면, 그 사람 내면엔 자아존중감과 자율성이 회복되고 세상을 달리 보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것도 않고 마냥 기다리는 건 아니다. 인간적 상호작용을 하면서 아이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에너지가 건강하게 솟구치는 것을 지켜보면 된다. 부모가 조급증으로 안달하는 것은, 실은 부모의 열등감이나 피해의식 때문이다. 물론 부모 잘못은 아니다. 사회구조 문제다. 그러나 사회를 제대로 고치기위해서라도 이 부분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서도, 열등감을 조장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운동이 필요한 까닭이다.

자유로워야 정직하다

여덟째, 자유로운 아이들은 정직하다.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한 아이들은 생존의 두려움에 떤다. 그래서 가식, 위선, 눈치 보기를 예사로 하며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면서 성과를 내기 위해 일중독자가 될 정도로 과잉 몰입하는 ‘피로 사회’가 생긴다. 자유롭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면 부모나 교사, 어른 앞에서도 아이들은 솔직하게 자기 생각이나 느낌을 말한다. 진정 자유로운 만큼 책임감도 있다. 늘 규율 속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규율 받던 사람이 자유를 누린답시고 방종을 일삼는 경우가 있는데, 방종과 자유는 천지차이다. 아이들이 진정 자유롭고 정직하면 사회는 더 건강해진다. 한국 사회가 어느 구석 하나 시원한 곳이 없는 이유는 이런 배경도 있다.

아홉째, 상처 받은 아이에게는 사랑, 공감, 자유가 보약이다. 사실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 수다를 한참 떠는 것은 중요하다. 친구가 해답을 주지 못할지언정 이해를 하며 끝까지 들어주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건 공감의 치유력 덕분이다. 교육자는 그래서 치유자이기도 하다. 물론 그 치유가 개인으로 끝나기보다 사회를 건강하게 바꾸는 것으로 가야지만 비로소 완성된다.

끝으로, 삶을 추동하는 힘은 이성보다 감성이다. 그렇다.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하면 우리는 특정 행동을 자꾸 한다. 갓난아기가 웅덩이에 빠지려 하는 경우 우리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아이를 구한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계산이나 이성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을 친구가 진짜 친구다. 사회와 역사를 추동하는 이도 그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그를 통해 자신도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손익을 계산해 움직이는 것은 장사꾼, 자본가이거나 속물 정치가다.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손익 계산을 하는 이성의 힘이 아니라 타자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타자의 행복을 나의 행복으로 느끼는 감성의 힘이다.

나부터 실천하여 작은 변화라도 같이 꿈꾸자

서머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이런저런 식으로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 가르침 중에서 하나라도 ‘나부터’ 실천하는 일이다. 물론 ‘나 홀로’ 실천보다는 ‘더불어’ 실천하면 힘이 커진다. 시골의 폐교를 ‘서머힐 스타일’의 대안 학교로 만드는 일, 일반 공립학교를 공립 대안학교 내지 혁신학교로 만드는 일, 지금부터 아이를 제2세대 노동력(성공과 출세)의 관점이 아니라 사랑(인격체)의 눈으로 보는 일, 일류대학이나 일류직장을 중시하기보다는 ‘일류인생’을 중시하는 일, 지역의 작은 모임이라도 적극 참여하면서 작은 변화를 같이 꿈꾸는 일, 바로 이런 일부터 해보자. ‘서머힐 스타일’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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