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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괴물을 처단한 영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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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괴물을 처단한 영웅(1)
  • 송길룡
  • 승인 2012.07.0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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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

▲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고스는 그리스 남쪽 끝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한 해안 인근에 자리잡은 작은 도시다. 이 반도에서 그리스 본토로 향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요긴한 길목에 있다. 지역은 크지 않으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니 일찍부터 번성했다. 아르고스의 주인으로 오랜 동안 부와 권력을 누려온 아크리시오스 왕은 자신의 막대한 소유를 물려줄 아들을 절실히 원했다.

아들이 아니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리는 왕에게 야단이라도 칠 심산이었는지 신탁은 "딸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어라"라는 답변을 내린다. 남자라야 나라를 강하게 지킨다고 굳세게 믿고 있던 그가 어찌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랴. 아들을 낳을 방도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심지어 괴이하고 끔찍한 주술에도 의지한다. 급기야 신탁은 그에게 진노한다. "네가 정녕 아들을 원하니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딸을 통해 아들이 생길 것이며, 그 아들이너의 권능과 목숨을 거둘 것이다."

어여쁜 모습으로 성장한 외동딸 다나에 공주는 잔뜩 겁에 질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왕궁 뒤편에 있는 청동탑에 갇힌다. 어느 누구도 청동탑 문에 걸린 자물쇠에 손댈 수 없다. 근처에 얼씬대기만 해도 목이 달아난다. 온통 가시덩쿨로 에워싸인 청동탑에서 공주는 비좁게 열린 창밖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흘린다. 어차피 죽은 듯이 갇혀 살아야 할 몸, 내 목숨을 끊어 아버지의 생명을 이어야 할까.

가라앉힐 수 없는 슬픔은 아름다움의 빛을 더욱 눈부시게 한다. 구름을 몰고 지나던 제우스는 어떤 칼과 창으로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청동탑 안에서 꾹다문 입술, 반짝이는 눈매의 한 소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에 밧줄을 감는 광경을 발견한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오히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쓰러질지도 모를 일. 그는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도록 온 하늘을 먹장구름으로 가리우기 시작한다.

단 하나 하늘로 열린 비좁은 창문. 그 작은 숨통마저도 갈래갈래로 나눈 튼튼한 쇠창살. 그 쇠창살 하나에 자신의 목을 죄는 밧줄을 걸던 다나에는 창밖을 통해 빛 하나 스며들지 않는 어둠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그때 멀리 칠흑의 장막 아래로 빛 하나가 떨어져내린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이윽고 온 세상이 일제히 쏟아져내리는 황금빛의 빗방울들로 가득해진다. 그 세찬 빛줄기 속에서 다나에는 누군가의 낮게 저며오는 부드러운 음성을 듣는다. "왜 그대는 그대의 죄가 아닌 일로 죽으려 하시오?"

그리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후, 청동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돈다. 그렇잖아도 두려운 신탁을 듣고 전전긍긍하며 지내던 왕은 그 해괴한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려 청동탑 문의 자물쇠를 풀기에 이른다. 다나에는 가슴에 안고 있던 아기를 가리키며 충격에 빠진 아버지에게 말한다. "이 아기의 이름은 페르세우스. 제우스가 낳게 해준 아버지의 손자예요."

▲ 2012년 7월 20일 06시 새벽하늘의 페르세우스자리. 자료=한국천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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