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가장 한국적인 민화, 유럽에서 보편성 인정받을까?
상태바
가장 한국적인 민화, 유럽에서 보편성 인정받을까?
  • 유태희
  • 승인 2019.01.02 16: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종의 예술가] 독일 뮌헨서 전시회 여는 배정란 한국전통민화가
배정란 한국전통민화가

민화는 한민족의 미(美)의식과 정감을 표현한 회화 양식을 일컫는다. 안견, 장승업 등 도화원 화공이나 사대부 문인들의 그림과 달리 중국 화풍의 영향을 받지 않은 회화 장르다. 민족의 생활 정서와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우리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민화라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는 매우 주목할만한 화가가 세종시에 있다. 배정란 작가다.

배정란 작가는 홍익대 미대에서 섬유예술학과를 전공했다. 가정을 꾸린 후 아이들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며 가정생활에 충실했다. 항공사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일-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버거운 삶을 살았다. 하지만 창조 욕구가 남달랐던 그는 틈나는 대로 붓을 들었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인류의 보편성을 함께 지닌 작품세계를 갈구하는 배정란 작가를 만나 전통과 현재성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대학을 졸업하고 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했다던데…. 더군다나 남편, 아이들 뒷바라지까지 하다 보면 작품활동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유나이티드 항공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늦깎이로 대학 선배인 남편을 만났다. 이어 출산을 하다 보니 꼼짝없이 육아에만 매달렸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혼자 남게 된 어느 날이었다. 학부 때 교양 철학 시간에 교수가 말했던 한 단어가 떠올랐다. ‘앙가주망(Engagement)이라고 사르트르가 한 말이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약속이나 계약이란 뜻이지만, 사르트르의 용어로는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뜻한다. ‘인생이란 것이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어쩌면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니 내가 스스로 일어나 사회에 참여하자.’ 이렇게 귀결이 되더라.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렵게 학업을 마쳤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평소에 마음에 있었던 것 같다.

내게는 참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것이 멍에만은 아니었다. 정말 그때는 아무도 없는 사막의 작렬하는 태양에 던져진 듯했고, 무수한 고요로 이루어진 사막의 차디찬 밤이었다. 결국, 이 거대한 침묵이 내게는 약이 됐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는가.”

배정란 작가는 그렇게 침묵의 시간을 창조의 시간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침묵이 너무 가까이 있어 내 몸처럼 느껴진다’는 막스 피카르트(Marx Picard)의 말처럼 오랜 침묵의 시간을 사색과 미적 사유의 시간으로 채우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 어떻게 섬유예술에서 민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나.

“뭐랄까 민화가 나에게는 친숙했던 것 같다. 병풍이나 다락방을 올라가는 문에도 민화들이 그려져 있지 않았나. 어려서부터 그런 그림들을 봐왔기 때문에 별 고민하지 않고 시도해 본 것이 십여 년이 됐다. 사실 민화는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존재하고 우리와 호흡을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새로운 구도나 기법을 시도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지 않았나 싶다.”

― 민화가 우리 미술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것은 분명한데 우리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민화는 사실 궁중 미술에 뿌리가 있다고 본다. 조선 시대에 화원들이 월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서민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생계에 보탬을 주었다는 기록들이 있다. 또 도화원에 들어가지 못한 화원들이 집에 치장을 할 수 있도록 벽장이나 벽, 백일이나 환갑 같은 잔칫날에 쓸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게 민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민족의 창의성과 시대상을 민화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민화는 생활감정과 미의식을 느낄 수 있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다. 민화의 미는 무엇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빛깔에 있다. 감, 주, 황, 녹을 주색으로 홍, 녹, 흑, 백이 알맞게 곁들여지는 색조의 아름다움과 조합이 매우 아름다운 격조를 자아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당채보다 훨씬 밝고 일본의 색조보다는 짙은 빛깔로 나타나는 특징도 나타나고 있다.”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배정란 작가

― 우리만의 색에 대한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만의 독창적인 색은 건물의 단청이나 여성들의 옷차림에 많이 표현됐다. 원래 색감이라는 것이 관능에 속하지 않는가. 우리 민족이 원래 호방하고 밝은 색감을 좋아한다. 하나의 체질적 감각이라고 할까, 뭐 그런 감각, 흥이 많고 끼가 다분한…. 그래서 지금 세계가 방탄소년단(BTS)으로 떠들썩하잖은가. 다른 나라 사람들은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그런 끼, 그게 바로 우리의 색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민화의 기법에도 어떤 특징이 있을 것 같다.

“정형화된 화법의 틀은 없다. 다만 주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사실의 묘사에 그치지 않는 어떤 여유나 해학, 일종의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독특한 공간구성 방법도 있다. 민화 안에는 여러 시점이 뒤섞여 혼재하지만 나름대로 하나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체와 대상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둘을 화면에 배치하는 식이다. 모든 색채가 강렬하게 대비되도록 하는 것도 민화의 공간구성 방법이다.

모든 사물을 밝고 명쾌하게 표현하면서 원근법이나 색채 구도 등이 불합리성을 띤다. 바로 그것이 민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 해외 전시를 계획 중이라고 들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아들 졸업연주회에 맞춰서 뮌헨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민화는 민족문화의 여러 모습을 폭넓게 묘사하면서 민중의 생활 속에 정착하면서 발전해 왔다. 사실 민화 속에는 기원과 위안, 또는 보는 즐거움이 담겨 있다. 유럽인들과 소통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주로 전통재현 민화를 준비해서 우리 것을 알릴 생각을 하고 있다. 일단은 우리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유럽에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 이번 전시회는 어떤 특별한 형식이 있나.

“전시공간에 그랜드피아노가 있다. 아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놨다. 이 친구가 뮌헨음대에서 석사를 마칠 예정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연주일정이 있어서 너무 바쁘다고 한다. 부탁을 들어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등록금 대준 어미 부탁은 들어주지 않겠나. 작은 연주회를 시작으로 소박한 한국식 잔치를 계획 중이다.”

― 세종시에서 개인전 계획은 없나.

“올해 세종시에서 개인전을 한 번쯤은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에서 전시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귀국전시회를 준비해볼 요량이다. 그러다 보니 종일 작업실에서 지내는 날이 많다. 어떤 날은 남편 식사를 챙겨줘야 하는데 깜박할 때가 있을 정도다.”

문화적으로 ‘디아스포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주체들은 자신의 문화적 파편들을 원래의 관련성으로부터 떼어내 여기저기로 이동시킨다. 고정된 장소를 떠나 다른 배경과 신속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지극히 ‘혼종’적인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적인 특징을 가장 크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진정성과 독창성, 창의성을 지닌 문화적 보편성으로 승화되기를 기대하는 배정란 작가에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월강 2019-01-02 17:18:42
친숙하지 않을듯 싶은 분야인데
왠지 은근히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무얼까?
우리와 숨결을 가까이 했던 무언가가 숨어있을듯하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