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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너머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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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너머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보다
  • 유태희
  • 승인 2018.10.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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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문화인물] 화가 정지은
화가 정지은

지금도 걸려있는지 모르지만 오텔드 빌(HOTEL DE VILLE)이라고 쓰인 파리 시청을 구경하다가 피에르 퓌비 드 샤반느(Pierre Puvis de Chavannes)의 ‘겨울’을 만났다.

인간이면 누구나 알 법한 슬픔과 고독의 감정을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절제된 회색조와 하얗게 눈 덮인 땅, 황량한 숲의 풍경은 전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모닥불 곁에서 아이의 발을 녹여주는 아버지, 사람들이 협동하여 노동하는 모습들에서 우리는 곧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샤반느는 ‘가난한 어부’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화가다.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탁한 캔버스 전면에는 작은 돛단배에 허름한 차림의 야윈 어부가 경건하게 기도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슬픈 감정이 올라와 울컥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하지만 풀밭에서 꽃을 꺾는 아내와 잠자는 아기는 역시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샤반느는 우리나라 서양미술사에서는 다소 과소 평가받는 작가지만, 피카소나 마티스, 고갱과 같은 거장들의 자전적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가다. 이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 거의 하나뿐인 전시공간 세종포스트빌딩 청암홀에서 샤반느를 떠올리게 하는 화가를 만났다. 미국 시카고에서 살다 세종시에 둥지를 튼 여류화가 정지은이다.

'눌림' 정지은, 종이에 혼합재료, 68×67㎝

작가 자신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 정지은의 ‘눌림’은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의 정신적・감정적 또는 육체적인 피로, 또 이를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한 인내심을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마치 샤반느의 그림에서처럼 우울과 슬픔이 화폭 전체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서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고통과 절망 너머 희망을 노래하는 그의 독특한 드로잉은 금강변 시멘트 길에 굳건하게 뿌리박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민들레처럼 건강한 생명력을 발산한다.

'고통의 그늘 : 자화상' 정지은, 캔버스에 아크릴, 75×75㎝

‘자화상’이란 부제처럼 ‘고통의 그늘’은 아침에 일어난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눌림’에서처럼 작가를 짓누르는 무거운 현실을 가감 없이 표현함으로써 타자와 소통의 문을 열었다.

그의 드로잉들은 우리 시대의 진실과 허위는 무엇인가 자문하게 만든다. 그것이 우리 인간에 대한 저주였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날카롭고 무거운 서사적이면서도 미적 구조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 속에서 고통을 나누어 희망을 뿌렸던 펄벅 여사를 보게 되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고통이 결국은 인류에 던진 희망의 메시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몇몇 유명작가들마저 '예술성이냐, 팔리는 그림이냐'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상파 화가 반 고흐도 1881년부터 그가 사망하던 1890년까지 약 10년 동안 900여 점의 유화를 남겼지만, 생전 판매된 작품은 단 하나였다. 안나 보흐가 구입했다는 ‘붉은 포도밭’이다.

그림은 화가가 평생을 거쳐 완성한 미적 철학의 결정체다. 화가 정지은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림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끝낸 상태에서 자신의 세계를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어서다. 바로 인간의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역설의 미학이다.

기존 질서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사람들이 예술가라면, 화가 정지은이 바로 그런 작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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