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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배롱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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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배롱나무
  • 세종포스트
  • 승인 2018.08.2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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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시] 하재일
우암사적공원내 남간정사의 배롱나무. 사진=평산 신기용.

내 이름은 배롱나무

하재일

 

매처럼 자유롭게 내 영혼은 카일라스(須彌山)에 도달하리
카일라스, 그 높은 층계에 오체투지로 몸을 던져 납작한 돌계단이 되리
육체는 자루나 나무상자에 담아 서늘한 윗목에서 사흘 정도 안치된 후
흰 구름의 다락방에 얹어 高山으로 실려 가리
타르초가 바람의 옷섶에 스미는 그곳으로
 
낯선 이방인 천장사는 마니차를 돌리며
내 주검의 피부 가죽을 정성껏 칼로 잘라내리
그 속에서 창자와 갈비뼈를 꺼내어 독수리들에게 목 붉은 장닭 사료 주듯,
골고루 나누어 주리. 이윽고 독수리가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들어
수사자처럼 咆哮하고 살점을 찢어먹으리
아작아작 오돌뼈를 깨물며 영혼의 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우리
 
속이 텅 빈 空明한 관절뼈는
시간이 흘러 달빛이 핏물처럼 고이는 우물 속의 피리 소리가 되리
눈 푸른 衲子의 염주알 굴리는 손때 묻은 맑은 소리가 되리
자잘한 뼈들은 山頂의 돌판 위에서 삶은 감자처럼 으깨어지리
그리고 남은 살점에 무미하게 빻은 보릿가루를 섞어 허공에 뿌려
다시 세찬 바람의 먹이가 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으리
 
누추한 삶을 버리고 기필코 카일라스(須彌山)에 나는 도달하리
사랑하는 벗들은 슬퍼하지 않으리. 탈색된 머리카락 몇 가닥 집에 건져 가
백일 동안 보관하는 가족은 절대 없으리
還生의 바람이 카일라스로 가는 협곡이나 빙하에 세차게 부는 것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이별이 조금 섭섭하기 때문이리
 
저자에 나가 火葬할 나무를 사는 수고로운 짓도 이제 할 일 없으리
연일 건조한 대지의 날씨를 탓할 것은 더욱 아니리
새의 날개에 깃털로 앉은 영혼이 카일라스山 하늘에 높이 떠 봉분처럼
萬年雪에 덮이면,
나의 생은 이전처럼 다시 시간의 처음에서 화려한 꽃으로 피어 시작하리
먼- 西域, 눈 푸른 육체 카일라스에서
 
굶주린 鬼神이 물어뜯기 좋도록 겹겹의 옷을 제거하고
속옷까지 벗기고, 등 푸른 생선 요리하듯
 
나무도마에서 주검에 칼집을 꽃무늬로 새겨 넣은 후
바람에 씻겨 주리. 숨이 멎은 뒤 얼굴에 찾아오는 침묵은
옥피에 쟁인 도화선 없는 불꽃놀이용 화약 한 묶음이 분명하리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 쓰지 못한 한 줄의 편지건만
굳게 다문 입술에 不立文字로 남겨 두니,
여름철 더위에 석 달 열흘 폭발하는 화려한 배롱나무 꽃으로

결국 내 못 다한 말의 전부를 간명하게 남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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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일 시인

*하재일은  1961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84년 월간 <불교사상>에서 공모한 만해시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아름다운 그늘> <선운사 골짜기 박봉진 처사네 농막에 머물면서> <달팽이가 기어간 자리는 왜 은빛으로 빛날까> <타타르의 칼> <동네 한바퀴> <코딩> 등이 있다. 문학평론가 임우기는 "하재일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파격, 비약, 돌발, 낯섬, 투박, 소삽의 시상들은 생물 무생물 인간 미물은 물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간에 차별 없이 일체 만물을 겸허하게 포용하고 기꺼이 접하며 그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더불어 변화하려는 시인의 천진난만과 텅 빈 가난한 마음(空)이 빚어낸 시정신의 결정이라는 점을 깊이 이해하며 그의 시를 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시는 계간 <시산맥> 35호(2018.가을)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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