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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우선인가, 여성선택권이 우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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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우선인가, 여성선택권이 우선인가
  • 지상현 기자
  • 승인 2016.11.07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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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법 1

지난 달 15일 서울 보신각 앞에 500여명의 여성이 모였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낙태죄 폐지 때문. 서울 뿐 아니라 광주와 대구, 부산, 진주 등 전국 곳곳에서 같은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낙태죄 폐지 요구하는 여성들


인공임신중절 수술, 즉 낙태 수술을 원한 여성과 수술한 의사들이 모두 처벌받기 때문에 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꺼려하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은 해외까지 원정 낙태를 가거나 수백만 원에 육박하는 수술비를 감당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지금처럼 낙태죄로 처벌되는 상황에서는 낙태수술이 음성화돼 안전하지 않는 시술로 건강을 위협받는데다가 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폴란드 등 유럽 여러 국가의 사례를 들며 낙태죄 폐지를 호소하고 있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발단은 보건복지부가 지난 9월 22일 입법 예고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에 낙태수술을 한 의사를 최대 12개월까지 자격 정지시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이 같은 방침에 산부인과협회도 반발해 왔다.


정부는 저출산 등 사회적 문제를 명분으로 여성과 의사들을 처벌하겠다고 나섰고, 당사자인 여성과 의사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여성의 선택권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낙태에 대한 사회적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대전법원에서 낙태수술에 대한 1심과 항소심이 엇갈리는 판단이 나와 주목된다.


대전 유성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던 A씨는 지난 2013년 7월 31일 임산부인 B씨를 상대로 낙태수술을 했다. 당시 태아는 약 7주된 상태였다. A씨는 같은 해 11월 28일 또 다른 임산부 C씨의 부탁을 받고 약 4주된 태아의 낙태 수술을 하다 적발됐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고, 결국 A씨는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대전지법 형사 5단독 송선양 판사는 지난 6월 업무상 촉탁 낙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A씨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원심 파기


송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낙태 수술이 위법하다는 점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피고인도 위법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면서 "영리의 목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낙태 촉탁 의뢰자들(여성들)의 헌법상 자기결정권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이유로 낙태 수술에 이르게 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대전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이태영 부장판사)는 최근 A씨에 대한 항소심 판결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사실상 A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


항소심 재판부는 "태아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형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중요한 법익의 하나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형법의 규범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점, 임신 4주 및 7주된 임부를 상대로 낙태수술을 했고 낙태를 의뢰한 임부들이 약물 등을 복용해 태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 혼인 외 임신 등을 이유로 낙태를 요구했던 점, 운영하던 산부인과를 폐업 신고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원심 파기 이유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 중에서 여성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판단한 셈이다. 이 같은 판단이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호소와 맞물려 확산될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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