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도시적 삶은 지속 가능한가
상태바
도시적 삶은 지속 가능한가
  • 유현주 미술평론가(미학박사)
  • 승인 2016.10.28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현주의 문학과 미술 사이 | ‘지속가능한 도시-꽃 II’展

여덟 작가, ‘생명의 리듬’을 그리다

김광섭 시인이 ‘성북동 비둘기’를 노래했던 시대는 산업화가 시작되던 1960년대 말경으로 전국적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던 때였다. 그때 시인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라고 노래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연에서, 그 비둘기는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였는데,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고 토로했다.

21세기 도시의 회색 빌딩 속에서 투명한 유리창 밖의 세상을 마치 컴퓨터 모니터처럼 바라보는 도시인들에게 비둘기는 더 이상 그러한 시어조차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 같다. 과연 사람들은 빌딩 숲과 네온, 전광판이 빛나는 도시의 거리를 정말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 고독, 막막한 단절감을 잊기 위해 이 정글의 도시 속에서 마치 바쁨을 자랑하듯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내가 몸담은 이 도시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던 필자는 마침내 지난해부터 <지속가능한 도시-꽃>전을 기획하게 되었다. 여기 그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신체의 맥박과 호흡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도시는 하루, 사계, 일 년의 시간처럼 반복적인 자연의 리듬이 아닌, 상품사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기계적이고 ‘동일한’ 리듬을 재생산한다. 정글과 같은 도시의 생태계에서 우리는 어느새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신호등만큼이나 반복적인 삶의 리듬에 익숙해져있지 않은가! ‘차이’나 ‘혁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반복은 ‘창조’라기보다는 죽은 리듬에 가깝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의 ‘다양한’ 리듬 즉 ‘생명의 소리’를 회복하는 것은 곧 도시 안에서 생명의 리듬을 찾는 몸짓이며 곧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 19~25일(1부)에 이어 26일부터 내년 1월 2일(2부)까지 에이픽갤러리(대전 서구 도안동 933)에서 열리는 지속가능한 도시-꽃 II, ‘정글의 도시와 생명의 소리’전은 지난해 도시와 자연의 ‘관계’를 물었던 ‘지속가능한 도시-꽃’전의 두 번째 시리즈다. 이번엔 전시의 부제처럼 ‘정글’로 묘사되는 도시를 재현하거나 우리 삶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생명’의 리듬을 그려내는 내용이다.

작가들은 주로 영상을 통해 도시의 기계적 소음이나 반복된 삶의 패턴을 하나의 리듬으로 작곡해낸다. 예를 들면, 이용제 작가의 <Accustomed to the sound(video installation, 4분33초, 2014)>는 그러한 반복된 리듬에 익숙한 도시를 스케치해 보여준다.

김민정 작가는 플라스틱으로 조립된 ‘거짓 녹색’의 도시 안에서 우울한 랩소디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미국유학시절부터 집중했던 ‘플라스틱’과 ‘그린’에 숨은 자본이데올로기의 조합을 <플라스틱 소사이어티(video installation, 3분 19초, 2014)>로 표현한다.

마르쿠츠 베른리 사이토는 최근 5년간 사회적 생태관계와 네트워크에 초점을 둔 작업을 해왔다. 그러한 작업들의 연장선상에서 작가는 <Soil Feeder: Fermenting my Everyday(video installation, 4분, 2014)>라는 작업을 선보인다. 실로 그는 약 2년간에 걸친 실험을 통해 도시의 화장실과 자신이 만든 창고를 사용하여 자신의 배설물을 흙에 거름으로 사용하는 ‘발효’의 방식을 비디오로 제작했다. 그 영상에서 우리는 현대식 좌변기임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작품 제목처럼 ‘매일의 삶을 발효시키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생명의 소리’의 또 다른 버전으로 ‘식물의 사운드’를 연구한 작업이 있다. 평소 내셔널지오그래픽을 구독하는 등 자연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진 작가 김지수는 ‘맹그로브’ 나무가 만들어내는 언어를 모티브로 한 작품 <맹그로브부터 맹그로브에게로(드로잉, 실, 2014)>를 선보인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자신들만의 소리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에서 관객들은 도시의 척박한 환경 때문에 이제는 그러한 언어를 잃어버린 식물의 사운드를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여덟 명의 참여 작가들은 저마다, 환경, 사회 시스템, 젠더 등 각자의 관심과 연계해 이 정글의 도시 속에서 울리는 가상의 리듬을 포착하고 있다. 그러한 리듬을 느끼며 시민들이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구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