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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적 관찰자로서의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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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적 관찰자로서의 예술가
  • 유현주(미술평론가, 미학박사)
  • 승인 2016.10.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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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주의 '문학과 미술 사이' | 소설 ‘목로주점’과 인상주의 미술

에밀 졸라, 유전·환경적 분석 통해 빈민가 조명
자연주의 문예사조 드가·마네 등 화가에도 영향
19세기 사회상 역사책 집필하듯 정교하게 관찰


예술가가 때로 한 시대를 면밀히 관찰하는 과학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로 접어든 18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과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실제 생리학(physiologie)이 포켓판 책으로 서점가를 한때 장식하기도 했고 1841년에는 무려 일흔 여섯 종의 생리학 서적이 출간되었다. 철학자 벤야민에 따르면, 그 생리학 관련 서적들은 “대로의 행상인부터 오페라 극장 휴게실의 멋쟁이들에 이르는 파리의 다양한 군중의 이미지들을 소묘”한 것들이다.


그러한 시대적 바람을 타고,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대문호 에밀 졸라의 소위 ‘자연주의’ 소설들은 자연과학적이면서 사회학적인 관심을 적용한 문학의 선봉 역할을 한다. 인간의 삶을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서 분석한 20권의 전집 <루공-마카르> 총서가 그 예다. 그 총서 가운데 하나인 소설 <목로주점>(1877)은 루공-마카르 가문의 한 여인 제르베르의 삶을 통해 다분히 사회과학자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살고자 해도 그럴 수 없다면, 그리고 가난을 벗어나려고 아무리 애써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라는.


프랑스 제2제정기(1852-1870) 파리 북부의 빈민가를 무대로 펼쳐지는 제르베르의 기구한 삶을 분석하는 졸라의 시선에는 냉철하게 그 답을 구하고자 해서인지 결코 감상적이거나 의도적인 과장의 덧칠이 없다. 작가의 과학적 분석을 따라가 보면, 제르베르의 알코올에 대한 집착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만큼이나 가족력에서 이미 유래된 것이었다. 술과 섹스의 유혹에 쉽게 이끌리는 감성적 유전은 그녀의 딸 나나에게로 유전되어 훗날 나나가 화류계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유전적 경향에 이어, 환경적 공간적 차원 역시 이들 가족의 운명이 파국을 맞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왜냐하면 제르베르 가족은 빈민가의 수많은 주점들과 더러운 환경, 욕설, 소란, 싸움, 어둠의 지배를 받는 거리에서 “가난의 콜레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각자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이 한 소설가의 머리에서 빚어낸 상상의 공간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 열악한 환경은 사실 19세기 파리 빈민가의 실제 상황이었으며, 에밀 졸라가 이러한 비참한 환경을 개혁할 필요를 절감함으로써 <목로주점>을 집필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목로주점>에 나오는 제르베르 가족이 거주하는 집은 그 당시 빈민가 노동자들의 전형적인 거주실태를 보여주는데, 소설에서 7층으로 된 이 비좁은 공동거주아파트는 좁은 우물이미지로, 불결하고 악취 나는 캄캄한 계단과 복도는 지하세계의 미로로 비유되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분위기의 건물 1층에 주인공이 어렵게 세탁소를 열었을 때는 마치 세탁을 통해 세상의 더러움과 맞서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님들의 온갖 때와 악취 나는 세탁물을 억척스럽게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세탁소를 차릴 때 얻은 빚을 갚아가기는커녕 더욱 빚을 키우게 되고, 세탁물의 악취에 익숙해지듯 현재의 남편이 술친구로 집에 끌어들인 전 남편과도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혼거하게 된다. 이는 그녀를 점차 체념과 무기력의 상태로 알코올 중독과 타락의 길로 가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시선은 같은 시대 그려진 인상주의 그림들에서도 나타난다.


에밀 졸라와 동시대 화가이며 유난히 발레리나를 즐겨 그렸던 인상주의 작가 에드가 드가가 있다. 그의 작품 중 <다림질하는 여인들>은 바로 <목로주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한여름 뜨거운 다리미의 열기에 정신이 혼몽해진 세탁부의 모습은 그대로 <목로주점>에 나온 여인들의 모습들이다.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 혹은 세탁부 여인의 모습은 일면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여인들로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삶은 비천한 것이었다.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당시의 발레리나나 카페의 여급은 매춘부와 같이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과 <올랭피아> 모두 매춘부가 등장한다. 그들은 옷을 갖추어 입은 신사 옆에서 누드로 있거나 혹은 흑인 여성의 시중을 받는 창부로 등장하지만, 시선만큼은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어 당시 부르주아지들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마네의 또 다른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에서는 여종업원 앞에 주문을 하는 남성의 모습을 비롯해 그곳의 향락을 즐기는 손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녀의 뒤 유리에 그 시대의 풍경처럼 반사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오늘날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풍경 속에서 19세기의 풍속을 읽게 되는 것은, 그리고 자연주의 소설가 졸라의 소설에서 가난한 서민들의 온갖 악덕, 알코올 중독, 아동학대, 매매춘, 혼거, 폭력이 난무하는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시대를 정교하게 관찰하는 사회과학자로서의 예술가의 예리한 시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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