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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불법, 부끄러움 없는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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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불법, 부끄러움 없는 탓”
  • 이충건
  • 승인 2014.10.0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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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송인창 명예교수의 ‘아파트 인문학’

무질서 판친다면 일단 정부 잘못
‘법치’ 우선하면서 도덕 강조해야
정신적 삶 가르쳐야 공동체 회복


품위와 격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미래가 어둡다. 행정중심복합도시 이야기다. 노상주차, 담장, 광고입간판, 쓰레기통, 전봇대가 없는 ‘5무(無) 도시’란 말이 무색해서다. 거리는 불법천지다. 불법 쓰레기 투기, 불법 주차, 불법 간판, 신호 위반 등. 한 곳에선 멋들어진 건물들이 들어서지만 도시에는 점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더 이상 현실과 괴리가 큰 이상적인 도시계획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다. 무법천지 행복도시가 품위 있고 격조 높은 도시가 되기 위한 방법을 인문학에서 찾아봤다. <편집자>

― 대전대 철학과 교수를 정년퇴직하고 ‘아파트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왜 ‘아파트 인문학’인가.

“아파트가 상징하는 현대인의 삶은 고립, 단절, 분리다.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으로 안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거부한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여유롭고 충만한 삶을 사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없다. 개체적 사고방식에 빠지고, 종국에는 사회 안에 극단적 이기주의를 탄생시킨다. 하버마스가 소통을 철학의 핵심주제로 삼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가정, 학교, 사회가 온통 불통이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는 인간성을 공동화시키고 인격 없는 삶, 물신주의를 지향하게 만든다. 그러니 망조가 드는 것이다. 아파트 인문학은 벽을 허물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소통이 이뤄지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 세종시에 많은 입주민이 몰려들면서 불법주차, 불법 쓰레기 투기 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도 아파트 중심의 개인주의적 삶과 무관치 않다는 것인가.

“세종시가 그렇다니 충격이다. 문제가 심각하다면 일단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도덕을 기반으로 한 사회였다. 공맹의 가르침은 법치 가지고는 안 되니 도덕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 내용 중 가장 빈번한 게 ‘예(禮)’, 즉 기강 확립이었다. 임진왜란, 병진호란을 거치면서 나라가 얼마나 엉망이었겠나. 그래서 조선중기부터 예치(禮治)가 강화됐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법치가 우선이다. 그걸 정부가 방기하고 있는 것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도덕이 함께 강조돼야 한다.”

― 도시 건설 초기단계여서 그런지 세종시에서 이뤄지는 불법의 정도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다. 정해진 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정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정해진 교통신호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조차 못하는 지금 같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까 걱정이다.

“고자(告子)는 인간의 자연적 상태를 식색(食色), 즉 식욕과 성욕으로 봤지만 맹자는 인간의 본래성을 선성(善性), 즉 착한 마음이라고 했다. 또 착함의 구체적 내용을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했다. 착한 마음의 대표적인 것이 사단지심(四端之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다 잃고 있다. 이런 마음이 드러나야 도덕적 공동체가 복원되고 나눔의 문화도 가능해진다. 서로 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복원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일이지만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이 커닝을 하다 들키면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재수가 없다고 한다. 죄의식이 없다. 수오지심, 부끄러움을 모른다. 커닝을 한 학생이 들키지 않으면 그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장학금을 탄다. 그러니 너도나도 커닝을 하게 된다. 모두가 지키기로 약속한 공공질서도 마찬가지다. 안 들키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하다.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미안한 마음이 들면 그러지 못할 것이다.”

― 남들이야 불편하든 말든 나만 손해 보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불법을 불법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사람이 몸을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다지만 지나치게 몸적인 삶, 물질적 삶을 추구하다보니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몸보다는 마음을 더 소중한 가치로 생각했다. 유학의 가르침은 사람은 짐승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다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됐다.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가 주가 됐고,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고 믿는 사회가 됐다. 인간(人間)은 사람과 사람사이, 나와 너 사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게 사람인데,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몸적인 삶을 우선하니 남이 피해를 보든 말든 상관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 그렇다면 몸적인 삶을 버리고 정신적 삶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없겠나.

“서구적 교육을 받다보니 사회성이 너무 희박해졌다. 사회보다는 개인을 우선한다. 인성교육, 도덕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교육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는 가정교육을 포기했다. 가정에서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반대가 됐다. 천상교육이다. 인간은 교육받는 존재다. 엄마가 아이와 가면서 쓰레기를 휙 버린다. 아이는 안 된다고 하는데 엄마는 괜찮다고 한다. 착한 본성의 아이가 엄마를 본뜨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학교에서도 그런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좋은 학교에만 보내려고 한다. 출세하고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인생관과 가치관이 넘친다. 그러니 약육강식의 논리만 살아남게 된 것이다.”

― 인문학, 특히 유학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다운 삶, 도덕적 공동체를 회복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한 말씀해달라.

“인문학의 기초는 몸적인 삶보다 정신적 삶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한국사상은 없다’는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유학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는데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유학의 정신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송인창(66) 대전대 명예교수는 충남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선진 유학에 있어서의 천명사상에 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부터 2013년까지 30년간 대전대 철학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철학회 회장, 한국동양철학회 회장, 한국주역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 ‘한범 동양 인문학연구소’를 창립해 매달 한 차례 아파트인문학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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