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Angry Mom’ 엄마들의 분노
상태바
‘Angry Mom’ 엄마들의 분노
  • 송전(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에술학과 교수)
  • 승인 2014.05.21 1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극읽기 | 브레히트의 ‘카라 부인의 무기’

독일공군 바스크 게르니카 맹폭

비무장 주민 300명 넘게 사살

큰 아들 잃은 어미 총 꺼내들어

송전
송전

무적함대로 대양을 지배하며 전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 르네상스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 강호 중 초라한 지경으로 떨어졌던 나라가 최근까지의 스페인이었다. 그것은 잘못 만난 지도자 프랑코 때문이었다. 그는 1937년 군인으로서 좌천당해있던 아프리카 북단 모로코의 지휘관이었다.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스페인 민주공화정 체제를 무너뜨리고 집권에 성공한 뒤 1975년까지 무려 약 40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세계 최장기간의 독재자였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과 신에게만 책임을 지겠다는 독선으로 자신의 뜻과 어긋난 이념과 반대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는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갈 상황(스페인 내전 1937-1939)에 빠지자 동시대의 또 다른 광신적인 독재자인 히틀러, 무솔리니의 조력으로 스페인의 정치적 소수파 지역인 바스크 지역의 성도(聖都)이며 당시 인구 5000명의 소읍 게르니카를 공습을 통해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다.

브레히트의 <카라 부인의 무기> 공연 포스터. 2012년 9월 29일 프랑스 아비뇽 떼아트르 푸프(Pouffe).
브레히트의 <카라 부인의 무기> 공연 포스터. 2012년 9월 29일 프랑스 아비뇽 떼아트르 푸프(Pouffe).

독일은 그들의 신형 공군전투기와 전폭기의 성능 실험장으로 평화롭게 시장 나들이를 하는 시민들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총을 난사 했다. 독일 공군의 맹폭으로 도시가 화염에 싸여 잿더미로 변해버린 이후 프랑코 군대는 그 도시에 진입했다. 그 유명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이 잔인한 폭거를 고발한 그림이었다. 이 난행으로 어린이들을 포함한 평일 소일하던 300명 이상의 비무장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때를 배경으로 한 한 연극소품이 있다. 현대 서사극의 연출가이자 이론가였던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카라 부인의 무기>(1937년 10월 파리에서 초연)가 그것이다. 파시즘 체제의 반인륜성과 폭력성을 고발한 이 작품의 무대는 한 작은 어촌이다. 극중 시간은 스페인 내전 당시이다. 카라라는 한 평범한 아낙네에게 20살, 15살의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이 생계를 위해 밤바다에서 어망질을 하는 동안 동생은 창가에 앉아 형의 배에 켜진 램프를 바라보며 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이때 이 아낙의 남동생이 찾아온다. 대놓고 말은 않지만, 프랑코 세력이 지역을 침탈해 들어오자 이들과 싸우기 위해 무기가 필요했는데, 프랑코 세력에 대항하다 죽음을 당한 매형의 무기를 얻으러 온 것이다. 카라 부인은 그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모른 채한다. 동생은 투쟁의 필요에 대해 누이에게 설득을 시도하지만, 누이는 동생의 부탁을 매몰차게 잘라버린다. ‘칼을 잡으면, 칼로 죽는다’고 굳게 믿는 아낙은 두 아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이 전쟁 상황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 사이 작은 아들이 형의 배의 램프가 꺼졌다고 외친다. 오뉘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한 무리의 동네 사람들이 피에 물든 돛에 감싸여 있는 시신을 매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들의 보트 곁을 지나던 쿠데타 군이 아무 이유 없이 총질을 하여 젊은이를 사살한 것이었다. 이 참변 앞에 아낙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자신의 현실도피를 자책하듯, 냉정하면서도 단화(端華)하게 지하실로 내려가 숨겨 두었던 소총 몇 자루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동생, 작은 아들과 함께 총을 거머쥐고 집 문을 나선다.

브레히트는 이 짧은 작품을 통해 선과 악이 싸우는 상황에서 중도, 중립이라는 게 불가능함을 선명히 밝힌다. 그 누구 보다 어미는 자식을 위험에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다. 가치판단이나 그 모든 것에 앞서. 그러나 자식이 훼손을 당하면 작고 여린 어미는 어떤 위험도 불사하는 성난 사자로 변모한다. 집단 참극인 ‘게르니카’ 사건은 스페인의 어미들을 분노케 했고, 이 사건은 프랑코 장기 독재를 옭좨는 영원한 족쇄였다.

우리는 시간의 물결 속에서 과거를 잊곤 하지만 기념일이라는 것을 두어 망각의 제어장치를 마련한다. 이 달 5월은 5·18이 있다. 1980년 전두환 반란세력이 정권장악을 위해 도발했던 현대 한국의 집단참극인 광주(光州) 시민학살은 강고할 것만 같았던 그의 체제를 내내 불안상태에 빠뜨렸던 시한폭탄이었고 향후 일부 군부세력의 정치적 야욕을 억누른 감시탑이 되었다. 거기에는 생태 같은 자식을 불의에 잃은 어미의 분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에 가족을 잃은 가족의 모임, 이른바 ‘민가협’은 매우 강력한 반독재 민주운동집단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엄마들이었다.

온 국민들을 낙망과 비탄 속에 빠뜨린 4월16일의 세월호 침몰은 누구보다 자식을 키우는 대한민국 엄마들을 경악과 분노로 몰아넣고 있는 듯하다. 자연재해도 아니고 그 유명한 타이타닉처럼 북극의 빙산과 충돌한 것도 아니다. 부패로 유발되고 야수와 같은 선장을 비롯한 일부 선원들의 무책임성 그리고 정부의 무능한 상황 대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다수 젊디젊은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300명의 인명이 수장된 이번 사건은 전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치욕감을 넘어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당국은 진정성을 갖고 맨 먼저 대한민국 엄마들의 ‘5월의 분노’를 풀어낼 방도를 찾아주길 바란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엄마의 슬픔과 분노에 대해 국가 지도자의 진정한 감응(感應)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