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잉여세대의 희망과 몸부림
상태바
잉여세대의 희망과 몸부림
  • 세종포스트
  • 승인 2014.02.15 1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 미래 잃어버린 젊은이의 무기력

그래도 우정과 연대를 갈망한다

소설가 박솔뫼는 첫 소설집을 내놓으며
소설가 박솔뫼는 첫 소설집을 내놓으며 "어떤 것은 낯설었는데 내가 멀리 간 것일 수도 있지만 소설들도 나름대로 발이 달려서 어디로 간 것 같다"며 "발이 달린 소설들이 뭘 하고 사나 그런 것을 생각하면 좋은 것 같다"고 작가의 말에 적었다. ⓒ자음과모음

소설가 박솔뫼(29)에 대한 설명이 우선 필요할 것 같다.

먼저 상투적인 약력사항 : 1985년 광주 출생인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학을 전공했다. 2009년 장편소설 <을>이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지난해 두 번째 장편 <백 행을 쓰고 싶다>를 냈다. 그 사이 12편의 단편을 여러 문예지에 발표했으며, 그 중 7편을 묶은 것이 이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다.

비평적 요약 : 데뷔 이래 줄곧 ‘주목 받는 젊은 작가’였던 박솔뫼는 그 자신이 속한 ‘잉여세대’의 허무감각을 주조로 전위적이고 실험적이거나 혹은 언어적 탐미성이 강렬한 서사들을 직조해왔다. 문체는 "구어체와 문어체가 패턴 없이 뒤섞여 의식과 무의식에 걸쳐서 유동하고 있는 자아의 상태"를 드러내지만 "과격하게 해체적이거나 파괴적이지는 않으면서도 오히려 무정부주의적인 반항보다도 더 불온한 방식으로 문법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하고 있다는 인상"(문학평론가 손정수)을 준다.

이번 소설집에 묶인 단편들은 등단 직후인 2010~2012년 사이 발표한 것들로, 실험성 계열과 탐미성 계열의 작품들이 두루 분포됐다. 이중 독자의 감성을 스며들 듯 석권하는, 가상의 섬마을 ‘해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먼저 권하고 싶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체로 아무래도 상관없거나 아무것도 아닌 인물들로, "단지 앞으로의 시간에서 변하는 것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 뿐"(‘해만’ 중) 이다. 해만은 육지로부터 배로 5시간 떨어진 섬으로 평생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를 살해한 존속살해범이 숨어들면서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는 각지에서 (아마도 여러 방면에서 실패한 후) 찾아온 이방인들이 묵고 있는 여행자 숙소가 있고, 이들은 무심한 듯 따스한 우호와 연대감 속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낸다.

이 황량하면서도 애잔한 공간에는 그러나 누군가 이곳을 떠나 다시 도시(아마도 수도)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잠복해있다. 결국 사람들은 차례차례 떠나고 ‘나’ 또한 ‘해만’을 떠난다. "그처럼 해만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천천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 결국 텅 비어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뿐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102, 103쪽)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 발행 | 1만2000원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음 | 자음과모음 발행 | 1만2000원

미래를 박탈당한 젊은 세대의 무기력과 그 반작용으로서의 친밀감과 연대의 갈망은 박솔뫼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의 소설이 저돌적이거나 공격적이기 보다, 분노의 뇌관마저 제거당한 듯, 슬프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친밀하고 자족적인 공동체는 오래 가지 않는다. ‘차가운 혀’에서 정서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한 몸이었던 ‘나’와 ‘나’의 연인 ‘누나’의 공고한 관계는 ‘나’가 아르바이트 하는 바의 사장이 던진 "런던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말로 인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런던 같은 데가 있을까 봐, 런던 같은 데서 누가 살고 있을까 봐. 가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갈 수도 없을 것만 같은데 누군가 살았다고 하니까" 무서워하는 ‘누나’와 달리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루하고 이미 늙은 사람 같다"는 노쇠한 무력감으로 본드의 환각에 빠진다. 어떤 외딴 공간도 제도의 계급이라는 자장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노래방에 갔다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감금당해 노래를 강요당하는 젊은이들의 수난을 부조리극처럼 그려낸 ‘안 해’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은 무조건적으로 "열심히"를 외쳐대는 기성의 체제에 대한 비난이자 조롱이다. 서글프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잉여세대의 현실을 그려내던 박솔뫼의 시선은 미 체험 세대가 직면한 ‘광주’라는 역사적 현실로까지 확대된다. 표제작 ‘그럼 무얼 부르지’는 광주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5월 광주’를 ‘1960년대 남미’나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의 역사와 직면하는 순간을 조명한다.

소설집에는 묶이지 않았지만 지난해 9월 발표한 단편 ‘겨울의 눈빛’은 원전사고가 일어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소설언어에 대한 미학적인 자의식과 동시대의 사회적 상상력이 새로운 세대의 감각 안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문제적인 사례"(문학평론가 이광호)라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4회째를 맞는 문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