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맞물리는 시간의 역사
상태바
맞물리는 시간의 역사
  • 이순구(화가, 만화영상학박사)
  • 승인 2014.02.04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산책 | M.C.에셔의 테셀레이션
‘파충류(Reptiles)’ M.C.에셔, 석판화, 33.4×38.5㎝, 1943
‘파충류(Reptiles)’ M.C.에셔, 석판화, 33.4×38.5㎝, 1943
이순구
이순구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간이다. 시간의 운용에 따라 차이와 반복의 이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윤회(輪回)라는 종교적 관점도 생겨난다. 또한 그 기록이 역사로 남게 된다. 역사는 대부분 승리자의 편이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승자의 이면이 반드시 존재한다. 미세한 경계 넘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관점의 역사이다. 승리하지 못한 자의 몫을 고스란히 기억하여 길이 전달하는 역사이다. 따라서 역사는 테셀레이션(Tessellation)으로 엮어진 시간들의 기록이며, 반복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aurits Cornelis Escher·1898∼1972, 네덜란드 판화가)의 작품에서 시간과 공간의 운용, 시각예술의 확연한 설명적 원리, 역사의 윤회에 대한 징후를 읽을 수 있다.

에셔는 고등학교시절, 미술교사의 영향을 받아 그래픽 아트에 관심을 가졌으나 대학에서는 건축을 전공하고자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본 담당교수가 그래픽 아트를 권유하여 이에 전념하게 된다. 학교졸업 후 이탈리아로가 시골집들, 산비탈의 마을, 기념비적인 옛 건축물들을 스케치해서 판화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으며 1924년에는 로마에 정착한다.

1926년 스페인남부 무어왕국의 수도 그라나다(Granada)에 있는 옛 궁전인 알함브라(Alhambra)를 본 뒤부터 궁전의 벽과 마루를 장식한 타일의 모자이크에 심취한다. 당시 이슬람교는 공공건물에서 형상미술을 금지시켰으므로 타일장식의 무늬는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에셔는 단순하지만 조직적인 모자이크를 이용한 미술유형의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했다.

그는 그 후 재차 방문한 이슬람 사원의 벽면을 장식한 아라베스크 양식들의 조합체인 알함브라 궁전을 철저히 관찰하였다. 무어양식의 벽돌의장에 대한 드로잉은 연속무늬에 대한 조형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 때 발견한 반복적 무한성의 원리는 그의 작품 전 분야에 걸쳐 바탕이 된다.

이때부터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 무한한 반복적 공간, 공간 안의 원과 회전체, 거울이미지, 평면과 공간의 상극, 불가사의한 형체 등이 그의 독특한 시각언어이자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이 연속무늬는 기하학적으로 독특한 모양, 공간착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에 있어 테셀레이션이라는 기법을 사용했다. 테셀레이션이란 동일한 모양을 이용해 틈이나 포개짐 없이 평면이나 공간을 완전하게 덮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의 '쪽매맞춤'과 같다.

그의 그림에 사용되는 표면은 평평한 이차원인데 그것은 다시 공간적이 되고, 삼차원이 되고 다층적으로 묘사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파충류 Reptiles, 1943>이다. 그가 자신의 논문에서 강조한 차원의 중요성을 입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 논문에서 "납작한 형태들에 질렸다" "나는 그들을 평면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2차원과 3차원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것이다.

이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출발점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연속적이다. 화가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의 특징은 스케치하는 평면에서 시작된다. 테셀레이션 기법으로 스케치된 평면에서 작은 악어는 입체가 되어 서서히 일어난다. 그리고 책 위를 기어가 삼각자를 지나고 큰 콧김을 한번 뿜어낸다. 여기서의 콧김은 입체의 현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작은 그릇을 지나 다시 평면 속으로 잠입하여 도식화가 된다. 이 과정은 현대미술에 포함된 특성들을 두루 담고 있다. 1차적인 평면회화와 입체와 설치물, 그리고 콧김의 퍼포먼스, 조형과 수학의 상관관계 등에 관한 연결을 유추할 수 있다.

이 그림에서 20세기 미술의 유형을 보며 시간 속에 담긴 역사의 서술 한 페이지를 읽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되는 혹은 기록되지 못한 삶들의 역사, 변신(變身)과 변태(變態)를 거듭하는 우리의 삶…. 우리가 과연 윤회적 반복이란 큰 회전을 거스를 수 있을까. 그저 담담히 살아볼 일이다. 그 회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인가.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