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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배자가 예술 트렌드 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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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배자가 예술 트렌드 좌우
  • 문옥배(음악평론가, 당진문예의전당 관장)
  • 승인 2014.01.2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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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 예술은 사회적이다
‘1848년 2월 25일 파리 시청에서 혁명의 붉은 깃발을 물리치는 라마르틴’ 앙리 펠릭스 엠마뉘엘 필리포토(Henri-Felix-Emmanuel Philippoteaux),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27.5×63㎝, 카르나발레미술관, 프랑스 파리.
‘1848년 2월 25일 파리 시청에서 혁명의 붉은 깃발을 물리치는 라마르틴’ 앙리 펠릭스 엠마뉘엘 필리포토(Henri-Felix-Emmanuel Philippoteaux), 19세기, 캔버스에 유채, 27.5×63㎝, 카르나발레미술관, 프랑스 파리.

교회→궁정·귀족→중산층 시민계급
예술후원자·애호가 변화 따라 달라져
천재=창조자, 낭만주의 영향일 뿐

문옥배

예술작품의 경향, 공연유형 등 예술의 생산구조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는데, 그 변화를 이끈 것은 예술가들이 아니었다. 예술가들은 작품생산의 일차적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작품경향의 변화는 예술의 외적 조건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그 외적 조건은 정치·경제·종교 등 사회적 요인이었다.

"예술은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사회학자 자넷 월프(Janet Wolff)의 언급처럼, 예술작품은 사회적 조건의 결과물이다. 예술경향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예술가가 아닌 예술의 사회적 조건이었다. 즉 예술의 트렌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다는 의미이다.

예술작품을 사회적 생산물로 이해할 때 특정한 집단에 의해 예술의 형식·장르·스타일·프로그램 등이 어떻게 형성되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의 생산과 수용은 사회 구조 속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예술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인간이 그 사회 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사회적 요인 중의 하나인 예술후원층, 애호가층의 변화에 의해 어떻게 변화했는지 음악을 예로 살펴보자.

서양음악에 있어 중세의 패트런(patron)은 교회였다. 중세의 사회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로, 단지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경제적·문화적으로도 시대를 지배했다. 중세의 교회는 예배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졌으며, 문화적 힘이 집중되는 곳이기도 했다. 교회의 예술 양식은 곧 중세의 예술 양식이기도 했다. 교회는 기악을 세속적인 것으로 보고 금지하였고, 이에 반해 성악은 장려했다. 중세는 성악음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후원 구조를 가졌던 것이다.

17세기 들어 종교개혁 등 교회의 정치적 몰락으로 패트런은 교회에서 궁정과 귀족으로 대치되었다. 궁정은 화려한 극장들을 궁정 안에 지었으며, 악단을 궁정 내에 상주시켰다. 중세에 교회가 원하는 음악을 생산해야 했듯이, 17~18세기에도 궁정과 귀족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생산해야 했다. 당시 건반음악의 융성은 건반음악을 사랑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1533-1603)와 스튜어트 왕조(House of Stuart)의 후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화려함과 웅장함을 즐겼던 군주들은 오페라를 후원하였다.

18세기 말엽 빈(Wien)은 온갖 수준의 음악회와 살롱 모임이 존재했으며, 여기에서는 직업 음악가와 아마추어가 함께 연주했다. 딜레탕트(dilettante)로 불렸던 당시 아마추어 음악가들은 대중 앞에서 연주할 수준의 연주 능력을 소유하였으며, 실내악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베토벤이 실내악을 많이 쓴 것은 이 때문이기도 했다.

18세기 말엽 유럽의 사회 구조적 변혁은 예술 패트런의 변화를 초래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궁정의 정치적·경제적 몰락으로 궁전과 귀족은 더 이상 패트런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작곡가들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패트런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였다. 작곡가들은 귀족이 아닌 일반 청중의 취향에 의존하여 작품을 쓰게 되었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대두와 시민사회의 성립 등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변화로 말미암아 중산층 시민계급의 문화적 향유 욕구는 증대되었고, 음악가들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작품을 써야만 했다. 이제 대도시의 일반 청중들이 패트런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예술은 정치·경제·사회와 무관하고 오직 천재에 의해 이루진다는 사고는 19세기 낭만주의 미학의 영향이다. 예술은 결코 사회현상과 무관한 순수한 존재가 아니다. 예술은 정치·경제·사회와 관계를 맺고 영향을 받기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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