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선조의 업, 후손에게 짐
상태바
선조의 업, 후손에게 짐
  • 송전(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4.01.29 0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극읽기 | 그리스 비극 ‘오레스티’

아가멤논의 아들, 아버지 죽인 어머니 살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 죄 때문에 범죄 몰려
신들의 구원… 사법 차원의 해결 모색 상징


송전
송전

고대 세계에 아직 사법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을 때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개인 차원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가문 안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상쟁은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을 터였다. 기원 8세기에 호메로스로부터 시작되는 유럽 문학, 그 중에서도 연극 장르에서 이런 고대 세계의 가족 간 갈등 양상을 어렵지 않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아트레우스 가문의 복잡하고도 처절한 범죄와 복수의 연속은 여러 그리스 비극에 파편적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를 전부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그런 사건들에 일관된 것은 부모의 죄가 자식의 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리스 비극 인물들 중의 하나인 오레스티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로 부모의 죄 때문에 범죄에 내몰리는 비운의 인물이다.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에서 가장 선배격인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티 4부작>은 바로 이 젊은이의 안타까운 범죄와 구원을 그리고 있다.

기원전 1300년경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은 이 작품의 결정적인 배경이다. 이 전쟁의 중심인물은 단연 오디세우스와 아가멤논이다. 아가멤논은 당시 강력한 도시국가였던 미케네의 왕이자 트로이 정벌을 나선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고,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반도 서쪽 작은 섬의 이타카 영주에 불과했다. 오디세우스는 지략으로 10년을 끌던 전쟁을 목마(木馬)를 이용해 종지부를 찍고 이후 또 10년 동안을 방랑한 끝에 정절과 지혜의 여인인 아내 페넬로페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 반면 아가멤논의 최후는 비참했다.

오레스티는 바로 이 아가멤논의 아들이었다. 그리스의 최강 도시국가였던 미케네 왕이었던 아가멤논은 에게 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다르다넬스 해협 입구에 위치하여 해상무역의 요충지로서 부를 축적한 트로이를 탐내고 있었다. 그의 제수씨는 스파르타 왕국의 왕비이자 당대 최고의 미녀인 헬레나. 그녀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바람을 피워 트로이로 도주하자, 아가멤논은 그리스 인의 자존심을 회복하자며 각 도시국가들을 선동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이 침략 전쟁은 처음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는 바로 전쟁 원인이라고 명시된 헬레네와 쌍둥이 자매였다. 그녀는 남편인 아가멤논이 많은 사람의 피를 요구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반대하는 편이었다. 아가멤논은 악천후로 함대의 출항이 지연되자 신탁을 받아 자신의 장녀 이피게니- 이 여성은 나중에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라는 드라마 속에 고전적 덕목을 양육하는 인물로 재탄생 한다–를 산 제물로 바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내의 거센 저항에 부딪친다. 그녀에게 있어 탐욕과 공명심으로 자신에게서 딸을 빼앗아 간 남편은 이제 복수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게 원정을 시작한 아가멤논이 10년 동안의 사투 끝에 가까스로 트로이를 제압하고 고향에 돌아온 날, 전쟁의 분진을 털어내려 자주색 옷을 입고 들어간 욕실 안에서 아내가 휘두른 쌍날 도끼에 세 번 찍혀 목숨을 잃게 된다. 남편의 부재 10년 동안 아가멤논의 미케네 왕국은 아내의 정부이자 자신의 조카뻘인 애기스토라는 사내에 의해 공동 통치 되고 있었고 아내의 복수 잔치가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티>는 그 다음의 이야기이다. 아가멤논에겐 늦둥이 아들 오레스티와 차녀 엘렉트라, 장녀 이피게니 외에 딸이 하나 더 있었다. 차녀였던 엘렉트라는 부친이 전쟁에 있는 동안 사련(邪戀)에 빠진 모친의 천대를 받으며 부친을 그리워하고 모친에 대한 복수심을 쌓아가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어린 동생 오레스티의 안전을 위해 그를 부친의 절친에게 빼돌린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프로이트는 그리스 비극에서 그의 중요 개념인 아들의 모친애(母親愛,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딸의 부친애(父親愛,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빚어낸 터이다.

세월이 흘러 장성한 오레스티는 부친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왕국으로 숨어들고 그를 만난 엘렉트라는 모친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어 복수 결행을 주저하는 동생을 부추겨 결국 모친을 살해하게 한다. 그리고 죄의식 때문에 오레스티는 광기에 빠져버린다.

이제 오레스티의 죄는 개인 차원에서 인간에 의해 심판되는 것이 아니라 신들의 회의에서 다뤄지게 된다. 신들은 심판을 위한 회에서 격렬한 찬반토론을 거친 후, 아테네 여신의 결정표로 오레스티를 고통으로 풀어주어 정결을 회복한다. 대신 복수를 조장하고 징벌하는 여신 에리니엔을 다독여 더 이상의 복수가 반복되는 것을 근절 시킨다. 이는 당대 사회에서 개인의 복수 행위가 금해지는 대신 ‘정의’를 위한 사법적 차원의 해결책이 강구되기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현대사회에서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물을 수 없다. 그러나 선조의 업은 알게 모르게 후손의 짐이 된다. 선조가 저지른 악업(惡業)의 크기가 클수록 그렇다. 선조를 빛내는 길은 후손이 선업(善業)을 쌓음으로써 투명하게 지워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후손이 선대에게 효도하는 일이다. 정치세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가멤논의 묘에서 엘렉트라와 오레스티의 만남’ 파에스툼의 적회식 크라테르(cratere en cloche a figures rouges, red figure bell-krater), 기원전 340-330, 마드리드 국립고고학박물관, 스페인.
‘아가멤논의 묘에서 엘렉트라와 오레스티의 만남’ 파에스툼의 적회식 크라테르(cratere en cloche a figures rouges, red figure bell-krater), 기원전 340-330, 마드리드 국립고고학박물관, 스페인.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