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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기계의 몸속에서 영혼이 살아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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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기계의 몸속에서 영혼이 살아숨쉬는 그녀
  • 송길룡
  • 승인 2013.03.11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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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쿠사나기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통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와 같은 시각으로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인식부터가 다르다. 사람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이 비록 사람의 형상을 띠었다고 해서 실제 사람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언제까지나 실제는 실제고 그림은 그림이니까.

그런데 서로 뚜렷한 구별이 있는 실제와 허상 사이에 공존이 가능한 공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다. 관객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움직이는 사람형상이 분명히 그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동시에 마치 실제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사람이 아니지만 사람보다 더 사람 같고 때로는 사람을 뛰어넘는 캐릭터가 나타난다. 거기에 애니메이션의 묘미가 있다.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의 대명사를 들자면 아마도 디즈니 제작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1937)를 찾게 될 것이다. 스크린 속 백설공주의 원형이 저 먼 옛날인 193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데에 적잖이 놀라게 된다. 모든 걸 인공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고려하여 그것과 구별되도록 실제 인물, 소품, 장소 등등을 그대로 필름에 옮기는 보통의 영화들을 ‘실사영화’라는 용어를 써서 지칭하게 됐다.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은 영화창작법의 커다란 두 축이다.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영향력이 그리 얕지 않다.

미국 애니메이션의 압도적인 제작과 향유의 한쪽편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독자적인 창작세계를 구축하며 발전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1988)가 펼쳐내는 다채롭고 미려한 동심의 환상을 접해본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재패니메이션’의 저력을 말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것! 이런 말이 아예 굳어져버린 관람문화가 깔려있기는 하지만 성인층을 대상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온 적잖은 시도들이 있어왔다. <매트릭스>(1999)의 창작자들을 매료시키고 그것의 모티브가 돼주었던 <공각기동대>(1995)가 그 중 으뜸의 자리에 올라설 만하다.

아름다운 동심의 세계만을 그려넣던 당시 애니메이션 창작세계에 느닷없이 문화적 균열을 일으키며 등장한 <공각기동대>.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애니메이션들이 문화적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몽롱한 환상을 반복적으로 되새기며 상품성만을 강조하게 된 현상들에 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회심의 역작이다.

모든 것이 전자화, 기계화된 가상의 미래세계에서 벌어지는 최첨단 범죄무대에서 특수수사팀을 이끄는 여성 팀장의 캐릭터가 그 세계에 걸맞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과 존재론적인 의문들로 가득한 철학적 고뇌와 함께 탁월하게 묘사돼있다.

‘쿠사나기 소령’이라 불리는 이 여성 캐릭터는 외모와 목소리가 여성일 뿐, 온몸이 인공생체기계로 이뤄져있다. 몸이 심하게 망가져도 똑같이 생긴 몸체를 공장에서 구해온 다음 자신의 ‘영혼’만 옮겨 저장하면 간단히 재생이 가능하다. 이때 자기 자신을 식별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정신적 구심점을 이 영화에서는 ‘고스트’라 부른다. 그녀의 캐릭터를 생각하면, 세상은 고스트가 있는 존재와 고스트가 없는 존재가 혼재된 세계에 다름아니다.

사람몸을 가지고 있지만 영혼이 없는 존재와 온몸이 기계로 이뤄졌지만 영혼이 있는 존재, 이 둘 사이에 어느 누가 진짜 사람에 가까울까? <공각기동대>는 이 질문을 짜릿하고 역동적인 가상세계 안에서 유유히 펼쳐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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