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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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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름, 어머니
  • 송명석 영문학박사
  • 승인 2012.12.24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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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곱다. `만산홍엽'으로 산은 불타고, 발걸음 닿는 곳마다 마주치는 풍경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수려하다. 높은 가지에 오롱조롱 매달려있는 홍시가 탐스럽다. 한 알의 열매 속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연하 디 연한 새순을 틔운 봄부터 지난여름 모진 폭풍과 장마 비를 견디고 불같은 뙤약볕의 가뭄도 버티었다. 가을날 과육을 익게 할 따사로운 햇살을 받기까지 아득한 시절 끈질기게 매달려 버티어온 끈기를 치하하고 싶다.
가을은 열매로 평가받는 계절이다. 사람도 식물도 그 열매를 보고 안다. 고염나무인지 단감나무인지를... 나는 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홍시를 보고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유독 홍시를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가지 끝에 달린 홍시를 보거나 시장바닥에 할머니가 팔려고 내놓은 홍시 소쿠리 앞에선 의례히 걸음을 멈추게 되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이내 뜨거운 것이 목 젓을 타고 올라온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10여 그루가 넘는 큰 감나무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가을이면 종일 감나무에서 따낸 감을 머리에 이고 10여리나 떨어진 시장에 내다 파셨다. 어릴 때 나는 저렇게 분꽃같이 고운 울 엄마가 하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일은 초겨울이 와서 감이 다 없어질 때까지, 우리 남매들이 모두 대학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머니 일곱 살 되던 해에 아버님을 여의고 엄한 새 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는 것을 본 어머님은 부자 집에 가서 밥이라도 실컷 먹게 하려고 열아홉에 시집을 보내셨단다. 종 가집 장남이신 아버진 체구는 작으셨지만, 호탕한 성격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사신분이다. 그때만 해도 천수답으로 하늘만 바라보는 농업시대라 지금 같은 정부, 지자체의 자금력이나 기술력의 지원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학비 맞추느라 힘들어도 아버진 집안대소사에 호기를 부리며 당신이 돈을 내야하는 분이셨다. 정작 집안일은 뒤로하고 일손이 없는 어려운 이웃집 밭을 먼저 갈아야하고 동네 굿은 일에 발 벗고 나서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셨다.
우리는 아버지 하시는 일에 어머니가 반기를 들거나 얼굴 찌푸리는 걸 본적이 없다.
그것은 자녀들을 훈육함에도 마찬가지로' 안 될 일. 그건 안 돼. 실패하면 어쩔래?' 등의 부정적인 말씀 하시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늘'장하다!. 하다보면 잘 안될 때도 있다 실망하지 마라. 고맙다. 다시 해봐라...'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이셨다. 우리는 어머니가 천사처럼 마음이 고와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어른이 되어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보니 어머니의 삶이 속으로 참고 인내하는 아픔의 세월 이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싸움도 적극적인 대화의 한가지로 때로 부부 싸움도 필요하다는데 우리 어머니는 큰소리 나는 걸 싫어하시고 늘 참아내셨고, 아버지의 고집이 만류함으로 중단되지 않는 다는걸 아시고 이왕할거면 오히려 돕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신 것 같다. 그리하여 가세가 기울어도 집안은 조용했는데 대체, 어머니 삶의 돌파구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비상구가 하나씩은 있다. 그것이 심하면' 중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나만의 탈출방법이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큰 병원의 원장님은 가족들을 만나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래된 승용차를 몰고 다니신다. 피곤하고 위험한데 비행기를 타시지요? 라고 했더니 "손수운전을 하면 치매도 걸리지 않고 무엇보다 추풍령휴게소에 들려 가락국수한그릇 사먹는 재미를 누릴 수 없잖아" 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알았다. 추풍령휴게소에서의 낭만이 그분의` 숨통' 이라는 것을.

아버지 먼저 보내시고 홀로 6남매를 건사하시던 어머니는 작년겨울에 생때같은 막내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부모를 앞섬이 가장 불효라 하는 것은 부모 된 자에게 이보다 더한 아픔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신 듯 넋을 놓고 지내신다.
가까운 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출 퇴근길에 자주 들려 문안을 여쭙고 있으나 여전히 불안하고 맘이 편치 않다. 한 끼라도 함께 드시게 할 맘으로 된장찌개를 주문하고 퇴근길에 어머니께 들리면 종일 쌓인 이야기를 봇물처럼 솥아 놓으신다. 이야기의 내용은 경중도 없고 두서도 없다. 그저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쳐줄 상대가 필요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늘 외로우신 게다. 쇼핑도 모르고 컴퓨터도 모르고 오직, 농사일밖에 모르시던 어머니가 친구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그 긴 긴 하루를 어떻게 보내셨을까? 서럽고 고단했던 세월의 실타래를 어디에다 풀어내고 어디에다 사정하며 이겨 내시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 내 어머니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명해 본적이 있는가? 시인 타고르는 사랑은`이해'라고 했다. 상대방의 고민이나 슬픔, 아픔의 깊이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잠든 어머니의 손을 잡아보았다. 옛날 회초리 들고 꾸짖어 주시던 그 손!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핑게로 잊고 살았던 어머니의 손은 이제 거칠고 힘없는 노인의 손이다. 힘들고 고된 삶의 여정에 지치고, 세월의 무게에 마음마저 연약해지신 어머니 품에 고개를 묻었다. 늦은 퇴근길에 달려와 파고들 어머니가 내 곁에 계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일인지. 지금 전화기를 들고 버튼을 누르면 신호음을 따라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지금 누구이건 간에 그전에 한 어머니의 자식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인연보다 소중하고 값진 인연은 지금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만난 것이다. 우리에게 어머니는 그저 내 존재의 시작이고 뿌리라고 함부로 기호화 시킬 만큼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그 존재함만으로도 감사의 대상이다.
자신의 새끼를 강하게 훈련시키기 위해 낭떠러지로 떠밀어버린 어미독수리는 새끼위에서 너풀거린다. 추락하던 새끼가 푸덕거리며 날아오를 때까지 주시하며 지켜내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자신이 지켜낼 자식들 때문에 주위를 맴돌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 어미독수리의 심정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늙고 힘없는 어머니를 위해 내 어깨를 내어 드려야한다.
어머니가 고단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편히 기대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내가 먼 훗날 후회 하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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