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혁신을 주창한 학자나 최고경영자들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한 이야기를 두루뭉술한 문장과 어휘로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혁신의 구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통 혁신을 언급하면 `질문을 많이 하라` `의문점을 제기하라` `창조적인 생각을 하라` `도전적이 되어라` 등의 이야기를 해왔다. 이런 이야기는 학교가 소규모일 때는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소규모를 넘어서 교육부가 되면서부터 교육 문화를 규정하는 `벽`의 두께는 점점 두꺼워진다. 구성원은 물론이고 교육부 자체도 벽을 넘어선 그 어떤 생각도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이야기하는 `혁신`에 뒤처지면 안 되니 대부분의 학교들은 혁신을 시도한다. 컨설턴트에게 의뢰를 하기도 하고 인재 개발 프로그램 차원에서 트레이닝도 한다. 예를 들면 스위스의 유명한 국제 제약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혁신 트레이닝`으로 유명한 미국 기업을 초청해 임원들 교육을 맡겼다. 혁신 트레이닝을 시작한 미국 기업은 곧 단 한마디도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제약회사의 임원들이 모두 50세 이상에 꼬장꼬장한 표정을 한 중장년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혁신`이 무엇인지 알 필요성도 없었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다들 앉아서 각자의 블랙베리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뿐이다. 혁신 강습과정을 마치 꼭 들어야 하기 때문에 앉아 있는 대학 학부의 교양과목마냥 앉아서 시간을 때우려는 임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앞뒤가 꽉 막힌 중견교사들 이상의 사람들이 항상 문제다. 그들은 혁신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지금 이대로 현상유지만 하면 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변화를 갈망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에게 혁신에 대해 질문하면 뻔 한 대답뿐이다.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등의 모범답안만 이야기한다. 문제는 `창조적인 생각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어떤 질문이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눈빛도 반짝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해당하는 불만 토로`다. 무엇이 가장 큰 불만인지, 어떻게 하면 해소될 수 있는지, 경쟁사에서는 어떤 혜택이 더 주어지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곧 봇물 터지듯 말은 쏟아진다. 변화는 필요 없다던 게으른 중견교사들에게조차도 불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은 신선하다. 그렇다면 대답은 간단해진다.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그 불만들이 채택되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올 수 있다면 사람들의 참여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젊고 열정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 새롭게 변화된 학교를 만들기 위한 `학교 죽이기`란 엄청나게 매력적인 활동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열정이 가득 한 사람들이 쏟아놓는 불만, 즉 `학교 죽이기`는 비전을 잃은 학교가 새롭게 재탄생하는 `윤회 기적`의 시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죽고, 이 세상에서 죽은 자는 저 세상에 태어나며, 저 세상에 태어난 자는 저 세상에서 죽고, 저 세상에서 죽은 자는 다시 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윤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동일한 사람이 계속해서 죽었다가 살아나느냐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영속적인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무아윤회를 주장하고 있다. 사람이 윤회에서 새롭게 태어날 때 그 모습은 항상 변한다. 육체에 있어서 연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마음만은 흩어 지지 않고 연속한다고 한다. 정신과 육체의 양 측면에서, 연속하되 항상 변화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현생의 존재와 내생의 존재는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다르지도 않는 윤회의 산물이다. 윤회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첫 단추는 `죽음`이다.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없음은 진리다. 윤회를 믿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그 존재를 깨닫기 위해서는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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