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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살면 좀 어떻습니까, 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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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살면 좀 어떻습니까, 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 신미정(동화작가)
  • 승인 2012.10.17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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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해 자기 자리를 내어주는 노간주나무 이야기

중간고사 마지막 날. 그래봐야 이틀 보는 시험 중 둘째 날이다.

이틀의 시험을 위해 아이들은 한 달 전부터 독서실이용권을 끊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어쩌냐’ 고 걱정하는 작은 아이를 격려 겸 위로하던 이른 시간, 고등학교에 갈 조카가 왔다. 야구글러브를 빌리러 왔단다. 여동생 네 아이들 둘과 내 아이들 둘은 죽이 잘 맞아 야구며 축구를 함께 즐기는 편이다. 특히 작은 녀석과 그 집 큰 녀석은 야구에 풀 빠져 체고를 가라고 할 정도로 주말이면 야구장에서 빠져 사는 아이들이다."임마. 고딩이 공부해야지 웬 야구야?" 하다가 얼마 전에 학교 야구선수로 대회 나간다는 말이 생각나 대회나가냐고 물었더니 체육시간에 하려고 빌리러 왔다는 것이다.

"안돼! 혀엉...오늘 나두 시험 끝나구 야구하기로 했어!" 단호하게 거절하는 아이. 방안에서 교복을 입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거실에 있는 조카가 뻘쭘하게 안타까운 듯, 하지만 이해는 한다는 듯이 서 있다가 고개를 숙인다.

"야구 글러브 두 개잖아. 하나 빌려주지?" 대답을 구하지만 묵묵부답인 작은 아이.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모 갈께요" 하고 문을 나서는 아이의 궁둥이를 한번 툭툭 때려주며 보내고 돌아서 들어오는 순간 작은아이가 맨발로 뛰어나가며 "재영이 형은?" 묻는다. 한 손에는 얼마 전에 조르고 졸라 샀던 야구 글러브와 공이 담겨져 있다.

"혀엉~~"하며 달려가는 아이.

"ㅎㅎ 마음약해서는~~" 들어와 식탁에 앉는 아이에게 혼잣말을 던지자 아침밥을 먹고 있던 큰 녀석이 웃는다.

‘그치...울 애들이 맘이 착해요. 마음이 불편한 것을 못 참는 거지’

그 잠깐의 순간 문득 내 머리에 스치듯 생각나는 나무. 노간주 나무가 떠오른다.

바위산 기슭에서 위태롭게 자라는 노간주 나무

우종영 샘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라는 책에 나오던 노간주나무. 여러 나무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있어서였을 것이다.

황량한 바위산 기슭에 내몰려 위태위태하게 자라는 노간주나무. 그 이유가 힘들게 자리 잡은 자리에 어느 날 진달래씨앗이 날아오면서 자리를 내어주는데 점차 진달래 군락에 밀려가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살아남는 것은 살고 그렇지 못한 나무는 말라죽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노간주 나무는 행복할까? 베풀면서 사는 나무. 어쩌면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힘든 자리에 살면서 살아남는 노간주 나무는 더 튼튼해지고 강해짐과 동시에 화려한 진달래무리로 인해 멋져 보이기도 하다. 그 책을 읽은 이후 산에 갔을 때 만나는 노간주 나무가 더 멋져 보이고 눈에 잘 띄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열매는 약으로, 바늘잎은 울타리로 다양한 쓰임새

노간주나무의 열매가 영글어 가는 가을이다. 이 열매는 약으로 쓰기도 하고 진토닉 서양 술의 원료가 되기도 한단다. 또한 열매를 햇볕에 잘 말려서 기름을 짠 것을 두송유 라고 하는데 이것을 창호지에 먹여 아픈 부위에 바르면 신기할 정도로 통증이 멎고 치유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요즘 누가 그 짓을 하고 있냐는 말로 전에 숲 해설을 하며 웃고 말았는데 그 두송유를 몸에 바르고 마시지를 하면 피곤할 때도 효과가 좋고 어혈 또한 풀어지고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며 몸 안에 있는 온갖 독소들이 빠져나간다 하니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에 다양한 종류의 파스가 나와 있어 ‘두송유 짜서 파스 만드는 시간에 다른것을 하지’ 하며 넘겼는데 시간투자를 하더라도 쉽게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단다. 노간주 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가 많고 암나무가 드물기 때문에 열매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엊그제 생태학교 수업 받으며 보았던 노간주 나무 열매가 참으로 귀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또한 노간주 나무는 생울타리로 조성하기도 하여 쥐가 잘 들락거리지 못한다. 일본에서의 노간주 나무 이름은 쥐를 찌른다는 말의 ‘네즈미나시’ 라고 불릴 정도였단다. 이는 바늘잎 때문일 것이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어린가지에 있는 바늘잎, 또한 옛날에는 소의 코뚜레로도 사용했으니 사람에게 고마운 노간주 나무가 소한테 있어서는 죽음의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리라.

쓰임 많고 남을 배려하는 자세 배웠으면

사람에게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도움이 되는 노간주가 어느 특정동물한테는 아주 고통스런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노간주 나무처럼 쓰임도 많고 다른 대상을 배려하며 최소한의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바보처럼 살면 좀 어떻습니까, 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라는 말이 떠오른다. 역시 우종영 샘의 책에 나오는 노간주를 평가한 문구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보다도 다른 이를 위해 조금씩 덕을 쌓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최소한의 것, 가장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작은 아들의 야구글러브를 계기로 엊그제 본 노간주 나무 울타리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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