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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이나 좌절된 연기군 라디오.통신기기박물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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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이나 좌절된 연기군 라디오.통신기기박물관 건립
  • 홍석하
  • 승인 2012.10.0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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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건립방안 찾아야...

최종문씨(75세)는 처외삼촌인 장도형씨가 고향 연기군(세종시)에 세계적인 라디오박물관을 만들고, 관리를 권유해 4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을 떠나 있을 때도 매년 지역친구 부부를 초대해 유대를 이어가면서 고향을 그렸는데 마침 고향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싶어 쾌히 승락하고 내려와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1년6개월의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 건립은 좌절됐다. 지금도 당시의 서류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그를 만났다.

고향에 40년 만에 돌아왔다고 했는데 대대로 살아왔나
친할아버지가 일제 때 구 조치원역사 측량을 맡아 내려와 일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함께 일하던 현지인(조치원 사람)의 중매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대동아전쟁(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 당시 아버지는 서울 청파동의 재산을 이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평리에서 나서 자랐는데 5~6살 때 서울로 유치원 유학을 다닐 정도로 집안이 부유했다. 연기군(세종시)은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고, 외삼촌(차진철)이 김창원 신진자동차 사장과 조치원읍의 명동초교 동기동창으로 신진자동차 부사장을 맡기도 했다. 외삼촌이 30살 무렵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전국열차순회 때 조치원읍 방문을 맞이하는 민간대표로 뽑힐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이모는 한국전쟁 전 숙명여대를 다녔다. 이모부는 고려강업이라고 충북 최대기업의 대표였다.

고향에 라디오박물관을 건립하려는 장도형 선생은 어떤 분인가
장도형씨는 처외삼촌이다. 라디오 전문가로 전국의 35개 방송국 개국을 위한 시설을 도맡았다. 국내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큼 기술을 가지고 있고 많은 통신부품을 국산으로 개발해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분이다. 라디오 방송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방송장비 수집도 국내 최고로, 방송기기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만큼 보유하고 있다. KBS무선국 라디오중계소에 근무하면서 라디오 수집을 시작했는데 소장하고 있는 모든 기기는 지금도 정상적으로 작동이 된다. 언젠가 진동관 라디오가 고장났는데 처외삼촌이 미국의 개미시장을 뒤져 부품을 구해와서 수리를 할 정도로 열성이 대단하다. 지금도 수집품 하나하나를 새것처럼 잘 관리하고 희소성이 있는 유물이 나오면 구입한다. 그러면서도 검소한 생활로 유명한데 은행에 가려고 서울 서교동에서 종로까지 삼베쓰봉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걸어 다녀 은행에서도 출입을 저지당해 지점장이 모시고 들어갔다고 한다. 한번은 KBS 공보국에서 방송에 잡음이 발생했는데 고칠 사람이 없어 처외삼촌을 모셨는데 예의 그 옷차림으로 방문하자 또 저지당해 공보국장이 뛰쳐나온 일도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했다. 한국근대사의 숨은 영웅, 큰 인물이다.

장도형선생이 수집한 유물은 얼마나 되는가
라디오와 통신기기 유물로 약 10만점이다. KBS 정현주 전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데 수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수원에 유치하려고 애를 썼다. 최근에는 지자체마다 서로 가져가려고 야단이고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사갈려고 타진을 해오기도 했다. 노대통령 시절, 정부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로 방송장비 전시회를 도와달라는 요청이 있어 우리가 직접 열겠다고 해서 전시회를 광화문에 개최했는데 정부에서는 워낙 희귀성이 있다며 유물 이동시 파손에 대비해 보험까지 들어주려 했다.

TV쇼 진품명품에서 감정도 받았다던데
그랬다. 돌로 된 마아크와 라디오였다. 대리석을 깎아 흑연가루를 넣어 전류가 흐르게 고안한 돌로 된 마이크로 일제 강점기 경성방송에서 첫 방송전파 발사 때 사용한 것이라 한다. 라디오는 1959년 11월15일 국내최초로 출시된 금성사 모델 A-501로 감정가 1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고향에 라디오박물관 설립이 좌절된 사연을 듣고 싶은데
첫 부지는 금사초등학교였다. 금사초는 청소년수련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박물관으로 활용하자고 이기봉 전군수와 협의를 했고 이 전군수도 열성을 가지고 도와줬다. 우리는 학술적인 자료로 영구보존할 목적이었다. 학교를 가보니 학교 자체가 박물관이었다. 건물은 강화유리로 감싸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강당과 운동장은 지역주민과 공동으로 사용할 계획도 세웠다. 당시에는 내판 쪽에서 장욱진화백 선양사업회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전의의 베어트리파크와 연계해 그 인근에 있는 빨간 벽돌집을 영구 임대해 주겠다는 제안도 있어 사업추진이 순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금사초가 맘에 들었다. 전의는 대기업에 흡수될 여지도 있고 장욱진화백 선양사업회는 사업이 지연되면서 늦어질 우려가 있어 독자 추진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고향에서의 박물관 건립은 순조롭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1년을 끌어가면서 처외삼촌의 재산세증명원을 제출하고 1000만원을 지불하며 가계약서까지 작성하며 충청남도로 부터 승인협의 요청까지 받았는데 정식계약이 늦어졌다. 본 계약을 기다리다 군에서 통보가 와 가보니 지역주민들이 난리가 났다고 했다. 금사리 주민들이 성명서까지 내며 반대를 해서 금사초등학교를 가보니 학교는 농기계로 둘러싸여 출입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학교 안의 일부 나무를 살리려고 보수와 치료까지 하며 돈을 투입하던 차였는데 난감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땅 장사꾼이라며 매도했다. 너무나 억울하고 비통했지만 결국 포기서를 제출하게 됐다.

임대를 할 수도 있었는데 왜 꼭 사비를 투자해 박물관을 지으려 했나
우리는 돈이 들더라도 우리 땅에 박물관을 만들고 싶었다. 유물하나가 천만원이 넘는 상황에 몇 백억이 될 수 있는 유물을 보관하려면 보안시스템을 구축하는데도 몇 억이 드는데 군수 바뀌고, 처음에는 영구임대라 했다가 지주가 맘이 바뀌면 나갈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을 우리는 꺼렸다.

주민들의 반대도 이해가 가지만 실망이 컸을 텐데
라디오 박물관이 지역에 만들어지면 연기군에 엄청난 문화적 가치와 성장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고향사람들이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내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쓰렸다. 타 지자체에서는 없는 브랜드도 만들고, 행정에 경영방식을 도입한다고 난리법석인데 정작 우리군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어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 뒤 금사초등학교를 이용한 청소년수련장은 운영이 안 돼 적자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시립박물관을 세운다고 하던데 당시에 설립되었다면 시도 비용지출을 줄여 최소 20억원 정도 이득이 될 수 있었다. 베어트리파크와 연계한 관광투어도 가능했을 텐데 너무 아쉽다. 금사초등학교에 이어 고복저수지 잔디광장 부근에도 박물관 건립을 재차 시도했지만 8000만원 만 손해보고 좌절됐다.

건립이 좌절된 이유가 주민반대가 아니고 다른 원인이 있었다고?
그렇다. 이기봉전군수는 열의를 가지고 도왔지만 당시 고위직 간부 Y씨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됐다. 농업기술센터에 근무했던 A씨가 전 도의원 B에게 알려줘 알게됐는데 여럿이 함께 들었다.

장도형선생도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아직도 추진의지가 있나요
사실 처외삼촌이 지금도 정정하시지만 90세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래 어느날은 수집품을 감정을 받아 일정액은 매매를 하고 나머지는 기증을 하자고 제안을 드렸지만 지금까지도 대답이 없으시다. 세종시 내에 박물관을 건립하려는 의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이만한 유물이 가진 박물관이 있나
전국에 라디오박물관은 없고 강릉에 소리박물관이 하나 있는데 측음기 등을 전시했다.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 시 2만불을 주고 구입해 온 건데 그 박물관 낼 때도 처외삼촌이 가서 수리도 해주고 기술지원을 다했다. 대전KBS에서 강릉 소리박물관 유물을 유치해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하루 5000명씩 관람객이 끊이질 않았다. 세계적으로 보면 뉴욕에 라디오박물관이 있는데 인터넷 열람료 만 5불이다. 우리가 이곳에 설치하면 전 세계에서도 연구하러 방문하고 전국의 과학도, 학생들이 줄지어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 *

라디오 및 특수음향기기 전문 연기군 공립박물관 설립 경과

◇ 설립필요성
-희귀성의 개인소장의 라디오 및 특수음향기기(약 5만여점)을 활용, 우리 군 지역에 사립박물관 설립을 추진했으나 토지매입, 건물 신축 비용과다 소요 등의 이유로 중단된 소리박물관을 공립으로 추진
-유휴 공유재산(옛 금사초교 부지)의 효용증대 및 송파수목원(현 베어트리 파크)와 연계 특색있는 관광자원화로 지역경제 부양효과

◇ 추진경과
〔1차추진: 옛 금사초등학교〕
○사립박물관 설립을 위한 공유재산 사용 조건부 승인:2005년 2월2일
○사립 금사리라디오박물관 설립계획 승인: 2005년 3월16일
○군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 승인: 2005년 4월27일 의회 의결
○공유재산 매매계약 체결협의 통보: 2005년 6월
-매각금액 7억9700만원
○전의면 금사리, 다방리 주민 라디오박물관 반대서명: 2005년 7월
-금사초등학교 역사성 및 도요지 훼손 가능성, 군유지 개인불하 부적합성 등 이유
○지역주민 반대로 공유재산 매입포기 및 사업중단: 2005년 9월
〔2차추진: 서면 용암리 잔디광장 앞〕
○박물관 설립장소 변경을 위한 부지 매입계약: 2006년 2월1일
○사립 용암라디오박물관 설립계획 신청: 2006년 3월30일(충남도)
○충남도 문화제 전문위원회 수장고 유물평가: 2006년 4월
-유물의 희귀성 및 박물관 설립 가능성 소장유물 규모성 인정
○사립박물관 설립계획 승인: 2006년 5월18일(충남도)
○도시계획시설 결정, 산지전용, 보안림 해제 등 선행조건 이행을 위한 추가비용(약 2억원 정도)증가로 사업포기: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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