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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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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을 다시 생각한다
  • 박권일 시사칼럼니스트(88만원 세대 공저자)
  • 승인 2014.10.29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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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소수의견 | 아직 끝나지 않은 ‘성장지상주의’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민족 판타지
희대의 사기꾼을 국민영웅으로 미화
진실을 외면했던 한국사회, 지금도…


황우석 사태를 다룬 영화 <제보자>가 개봉했다. 9년 전의 엄청난 소동, 그 전모를 영화 한편이 전부 담아낼 순 없었을 게다. 그래도 다시금 황우석이라는 이름을, 황우석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는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나는 20대 후반의 기자였다. 황우석의 거짓말이 드러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취재에 뛰어들었다. 기자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의도치 않게 줄기세포 공부를 해야 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지식과 정보의 벽에 막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는 어려웠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황우석 사태는 그야말로 총체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가려져 있던 한국사회의 어떤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논문 조작이 학문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 명확해진 2014년 현재에도 그 치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절박한 사안이 된다. 이건 바로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이데올로기에 관한 것이다.


황우석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로 재단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성장지상주의’라는 말로 정리하고 싶다. 그것은 박정희 시대가 남긴 유산이며 ‘민주화 이후’ 시대인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배하는 주인기표다. 황우석의 치부를 보려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태 초기 연구과정의 석연치 않은 부분을 지적하던 과학자와 저널리스트를 협박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과학기술의 성과가 단숨에 한국을 일등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민족 판타지였다. 그 판타지는 사회·문화적 성숙을 통해 좋은 사회, 훌륭한 민족 공동체를 만드는 따위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우월성을 통해 신흥시장을 독점하고, 그 이윤으로 선진국이 되겠다는 욕망이었다. 이 열정의 특징은 과실이 누구에게 주로 떨어질지는 결코 묻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가장 절묘하게 드러난 게 바로 의학전문기자 홍혜걸의 글이다. 그는 2005년 11월 24일자 <중앙일보> 칼럼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지난 해 기자는 영국 학술잡지 <네이처>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 의도는 명확했다. 그들은 황우석 교수의 업적보다 난자의 출처가 궁금했던 것이다. 겉으론 생명윤리를 내세우지만 속으론 연구진에 대한 흠집내기 의도가 역력해 보였다. (...) 우리가 뿌린 씨앗인데 남들에게 열매를 빼앗길 수 없다. 먼저 분열된 국론을 통일해야 한다.”
소위 진보·개혁세력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오마이뉴스>의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던 유창선 씨는 2005년 12월 5일 ‘황우석 몰아세운 일그러진 진보주의’라는 글에서 황우석의 연구에 의문을 제기하는 진보세력에게 호통을 친다. “황 교수 지키기에 나서는 것은 주류언론이고, 황우석이라는 '우상'을 '이성'으로 깨뜨리는 것은 비주류 언론이라는 식의 발상. 그 같은 발상이 지속되는 한 주류언론과 비주류언론의 위치가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비감한 예감마저 들었다.”


유시민 씨는 2005년 12월 7일 전남대학교 특강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PD수첩 프로듀서가 황우석 교수를 검증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내가 가서 검증하는 것과 똑같다. 기자나 나나 생명공학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보건복지위원을 2년이나 했기 때문에 좀 안다. PD수첩이 부당한 방식으로 과학자를 조지니까 방송국이 흔들흔들 하고, 광고 끊어지고 난리 아니냐.”(유 씨는 사태가 명백해진 다음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PD수첩의 강압취재 문제가 나온 직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인터넷매체 <판갈이넷>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은 더 충격적이었다. ‘MBC사태, 취재윤리가 아니라 숭미간첩죄가 본질’ ‘숭미-친유대금융자본 반국가 매판세력을 일망타진하라.’


김어준 씨는 황우석의 조작이 이미 드러난 시점에서도 집요하게 ‘썰’을 유포했다. “새튼의 특허와 그로 인한 어마어마한 이권, 그리고 그 이권을 새튼에게 돌아가게 하고 그 반대급부로 이권의 일부를 공유하거나 관련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동조, 협조한 세력이 존재한다.”(<딴지일보> 2006년 2월 28일 ‘새튼의 특허에는 음모가 있다’)


황우석 사태는 공익 제보자의 결정적 제보, 과학자들의 검증, 몇몇 저널리스트의 취재로 끝내 실상이 밝혀졌다. 국민적 영웅은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2010년 황우석의 수암생명공학연구원 기공식에 국회의원 등 수천 명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정부기관의 특수목적견 사업에도 정식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아직 황우석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성장지상주의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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