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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분노의 파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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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분노의 파괴력
  • 송 전 교수(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공연예술학과)
  • 승인 2014.09.15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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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읽기 | 유리피데스의 ‘메데아’

세상에 대한 회의·모멸감·통한·절망이 합쳐진 분노
고대비극이지만 4·16 세월호 현실과 다르지 않아
절망적 분노 보듬을 따뜻한 모성의 지도력 아쉬워


모든 절대적인 것을 파괴한 형상인물, 메데아. 그녀는 사랑의 쟁취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여인이었다. 그 사랑이 배신당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을 둘러 싼 모든 것을 파괴하며 자신의 분노를 터뜨렸다. 그 분노 앞에 기존의 사회질서나 신적 정의(正義)도 한낱 구호에 불과했다.


그리스의 젊은 영웅 이아손은 어린 시절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버려진 아이가 되어 숲속에서 자랐다. 전투력을 갖춘 건장한 청년이 되어 부친의 왕좌를 찬탈한 숙부(펠리아스)를 찾아간다. 이미 신탁을 통해 짝신을 신은 자가 나타나 왕좌를 요구할 것이란 예언을 들었던 터라 숙부는 조카의 존재를 알아보고 상황 모면의 계책을 구사한다. 왕좌를 물려 줄 의사가 있으니 왕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제시하라며 저 먼 땅 야만의 땅 콜키스의 보물인 황금양피를 탈취해 오라고 요구한다.


이아손은 그리스 땅의 유명한 호걸들을 끌어 모아 새로이 건조한 배 ‘아르고’호를 타고 모험의 뱃길을 떠난다. 여러 해상 장애를 뚫고 흑해 연변의 콜키스에 도달한 또 다른 시험의 관문들과 마주서게 된다. 이때 결정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 바로 콜키스의 공주 메데아였다. 메데아는 이아손을 본 순간 거센 사랑의 불꽃에 불타 자신의 현실을 잊어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지닌 마법의 힘을 한껏 활용해 이아손을 돕고 국가의 비밀을 아무 주저함이 없이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이아손이 콜키스의 국보인 황금양피를 훔쳐서 달아나게 해주고 그를 따라서 모국을 등지고 함께 탈주한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합류한 이아손 일행을 추적해 온 남동생을 유인해 이아손의 손에 참살 당하게 만든다. 그녀는 그렇게 사랑에 ‘올인’하고 이아손의 아내가 되어 그리스 땅으로 온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유리피데스(Euripides, BC 480~406)의 <메데아>는 이 과정 이후를 그린다.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아손은 왕좌를 되찾지 못한 채 여전히 떠돌이 신세다. 메데아는 어느 날 유모에게 남편이 된 이아손이 손님으로 머물고 있던 코란트 왕국의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과 두 아들을 버렸다는 말을 듣고는 슬픔, 절망, 분노에 휩싸인다. 게다가 연적의 아비인 크레온 왕이 후환이 두려워 메데아를 두 아이와 함께 추방하겠다고 포고한다. 마지막 말을 하러 나타난 이아손은 자신의 새 결혼이 자신의 욕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두 아들과 메데아를 안전하게 보호하려는 방안이었다고 변명한다. 메데아가 수긍할리 없는 변명.


아테네 왕 에게우스로부터 도피처 제공을 약속받은 메데아는 철저한 보복을 설계한다. 먼저 배신한 남편 이아손의 요구에 순응한 척하며, 두 아들의 추방을 모면케 하기 위해 그의 새신부가 될 공주에게 황금 왕관과 비단 옷을 두 아들의 손에 들려 선물로 보내겠다고 말한다. 이아손은 이 말에 솔깃하여 동의한다.


그러나 이 선물엔 메데아의 마법력을 품은 맹독이 스며있었다. 이 복수의 한 수는 완벽하게 이뤄져 그녀의 연적은 몸이 불타고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당하며 죽어간다. 고통 속의 죽음을 당한 딸을 부여안고 통곡한 아비 크레온 왕마저 시신에 엉켜 붙어 죽고 만다. 메데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남편을 죽이려던 애초의 계획을 바꿔 두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 이아손에게 절망의 고통을 안긴다. 그리고는 공중수레를 타고 코린트를 탈출하며 이아손을 차갑게 비웃는다. “그래요. 내 슬픔. 이제는 당신도 비웃지 못할 테니 내게는 즐거움이에요.”


이아손과 메데아의 사랑의 파국에 대한 이 드라마는 인과응보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세계문학사가 관심을 둔 측면은 극작가가 그려낸 끝 간 데 없는 메데아의 절대 분노였다. 그녀의 분노는 자신의 삶을 포함해 고대 그리스 사회의 모든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수준의 분노, 삶과 세상에의 회의, 모멸감, 통한(痛恨), 절망이 모두 합쳐진 그런 분노였다.


메데아의 심리 상태를 우리 현실의 맥락에서 되짚어 읽어볼 수도 있다. 4·16 세월호 비극의 적절한 치유가 답보 상태다.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대해 통한과 분노를 느꼈을 유가족에 대한 정부 여당의 행태나 짐승의 언어로 그들의 상처를 덧나게 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일베’ 일파나 소위 무슨 노인회라는 단체의 행태, 그리고 인간적 모멸감을 불러일으키는 일부 언론 매체의 입질은 이들을 메데아가 느꼈을 그런 극한 분노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듯 보인다. 


대통령의 첫 번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집단적인 참척(慘慽:자손이 부모나 조부모 보다 일찍 죽음)의 비극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며 눈물을 흘리고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 줄 모든 방도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던 그다. 그러나 40여일을 단식하며 집 앞에서 면담을 탄원하는 한 학부모를 포함한 유가족의 움직임을 철저히 외면하고, 온 가족의 기쁜 재회의 때인 추석 명절에 노상에서 아픈 소원을 외치는 이들이 엄연히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꾸면 꿈이 현실로 이뤄진다”는 썰렁한 덕담을 흘리고 있다. 어느 언론인은 이런 그의 태도를  ‘사라진 7 시간’을 덮기 위함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행적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유가족들의 집단행동이 경제 불황을 야기한다는 여론이 작위적으로 조성되어 그들이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소수인 그들을 극한 분노로 몰아넣을 수 있어 극히 우려스럽다. 이들의 절망적인 분노를 쓰다듬어야 한다. 그것이 지혜로운 따뜻한 모성의 지도자라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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