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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에서 태어난 무수한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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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에서 태어난 무수한 명곡
  • 한동운(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4.08.05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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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노트 | 작곡가들의 여름 나기

유럽 7~8월 공연장 휴식기, 페스티벌 찾아야

하이든, 단원 휴가 주려 ‘고별교향곡’ 만들어

여름 휴양지조차 작곡가들에겐 영감의 소재



장마와 삼복더위, 그리고 피서!

더위를 피해 국내의 산과 바다는 물론이고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여름 휴가철이다. 소음과 분주함, 시끌벅적 같은 단어로 대표되는 도시의 일상이 무색하게 한적하다. 공연장 역시 여름(7~8월)은 휴식기에 들어가는 계절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의 공연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유럽의 연주 홀은 가을에 공연이 시작해서 다음 해 봄에 한 시즌을 마감한다.

비록 도심의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없지만, 유럽을 대표하는 휴양지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여름 페스티벌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이탈리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프랑스 오랑주 페스티벌·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아비뇽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올해로 11회를 맞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여름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여름 페스티벌은 과거의 유럽 궁정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왕이나 귀족들은 여름의 더위를 피해 유럽의 휴양지에서 가을이 오기 전 7월과 8월 두 달여간을 보낸다. 이 기간에 궁정의 요리사는 물론이고 궁정 음악가들이 함께 대동하여 휴양지에서조차 궁정 생활에 버금가는 연회와 음악을 즐겼다. 휴양지에서 만들어진 음악과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대표적인 일화는 하이든의 <교향곡 제45번 올림 바단조>의 4악장 작곡 배경이다.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휴양지 노이지들러 호반(Neusiedlersee)의 궁정에서 여름 휴양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이 다 지나갔는데도 아이젠슈타트(Eisenstadt)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가족을 보지 못했던 단원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작에게 여러 차례 단원들의 휴가를 제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이든은 교향곡 45번 4악장에서 두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남을 때까지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무대에서 퇴장하는 재치 있는 구상으로 후작에게 항변했고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교향곡 45번을 일명 ‘고별 교향곡’(1772)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웃지 못 할 슬픈 일화도 있다. 1720년 괴텐(Kthen)의 레오폴트 후작과 함께 세 달여간의 칼스바트(Karlsbad) 휴양에서 돌아온 바흐는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욱이 바흐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내의 장례가 이미 끝난 뒤였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바흐에게 고용주와의 장기간 휴양의 동행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가혹했다.

17~18세기를 지난 자유 음악가(Freelancer)로 활동하던 19세기의 많은 작곡가는 개인적 휴양과 요양 차원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걸작이 유럽의 다양한 휴양지에서 작곡된 것을 보면 휴양지에서조차 작곡가들은 창작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못했던 것 같다. 가령,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Symphony No.7 in A major Op.92)은 보헤미아의 휴양지 테플리스(Teplice)에서 작곡하였고,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Symphony No. 9 in C major, D. 944 "The Great")은 오스트리아의 휴양지 그문덴(Gmunden)과 바트가스타인(Bad Gastein)에서, 쇼팽의 <발라드 2번>(Ballade No.2 op.38, 1836)은 마주르카(Mazurka) 섬에서 휴양하고 있을 때 완성되었다.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 제2번>(Piano Quintet No. 2 in A major, Op. 81, B.155)은 1887년 여름 휴양지에서 작곡했다.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 3번>(Piano Trio in C minor, Op. 101, 1886), <첼로 소나타 2번>(Cello Sonata No. 2 in F major Op. 99, 1886), <바이올린 소나타 2번>(Violin Sonata No. 2 in A major Op. 100, 1886)은 스위스의 호반 도시 툰(Thun)에서 휴양하면서 작곡하였고, <교향곡 2번>(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1878~1879)은 오스트리아 남부 휴양도시 뵈르테 호숫가의 푀르차흐(Portschach)에서 작곡하였다.

아마도 구스타프 말러만큼 여름휴가를 가장 잘 활용한 작곡가도 드물 것이다. 지휘자로 바쁜 시즌을 보낸 말러는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해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예를 들어, 북오스트리아 휴양지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의 슈타인바흐(Steinbach)에서 교향곡 2번과 교향곡 3번, 가곡집인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Des Knabens Wunderhorn) 그리고 남부 오스트리아 카린티아(Carinthia)의 마이어니그(Maiernigg)에선 교향곡 4번·5번·6번·7번·8번과 뤼케르테의 시에 의한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Das Kindertotenlieder)를 작곡했다.

그 옛날 작곡가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용주의 결정에 따라 피서 기간에도 연주와 작곡을 해야 했고, 개인적으로 휴양 차 보낸 여름 휴양지조차 작곡가들에겐 영감의 소재였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의 연속이라는 점을 떨칠 수가 없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궁정 음악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쩔 수 없이 휴가 여행에 끌려갈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휴가지에서조차 일할 것이다. 올여름 필자는 휴가비용으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샀다. 도서관에서 마음껏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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