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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의 폭력 다시 오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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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의 폭력 다시 오지 않게…
  • 양홍주 기자
  • 승인 2014.05.30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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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세월호 참사 앞에 유효한 마지막 외침

독일 제3제국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z Birkenau)의 입구.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던 150만 명의 수용자가 이곳에서 굶주림과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됐다. ⓒwikipedia
독일 제3제국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z Birkenau)의 입구. 대다수가 유대인이었던 150만 명의 수용자가 이곳에서 굶주림과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됐다. ⓒwikipedia

프리모 레비 지음 | 돌베개 펴냄 | 1만3000원
프리모 레비 지음 | 돌베개 펴냄 | 1만3000원

살아남은 자에게는 책무가 있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 슬퍼할 겨를만 허락되진 않는다. 다시는 비슷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위험을 알리고 증언해야 할 당위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회생했던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가 1987년 스스로 삶을 등지기에 앞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를 남긴 이유는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증언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레비가 최후의 1년을 남겨두고 40여 년 전 경험했던 나치즘과 현대 인간의 위기를 치밀하게 분석한 이 책은 "강제수용소 체험에 대한 투철한 고찰"(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이면서 "나치의 절멸 체제에 관한 어두운 명상"(뉴욕타임스)이라 불려왔다.

최근 국내에 첫 완간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인류사에 유례없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인간성 파괴의 희생자인 당사자가 그날의 사건을 냉철히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대인 학살 관련 책들 가운데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보통 증언자와 분석자가 불가피하게 분리돼 진실의 왜곡이 이뤄지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레비는 철저한 자기성찰과 비판정신을 동원해 독자들의 시각을 정직하게 이끌어낸다.

책은 어째서 나치즘의 폭력이 발생했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레비 자신을 포함한 피해자들의 증언이 어디까지 전해질지에 대해 다양한 물음을 던진다. 레비는 특히 2장 ‘회색지대'에서 권력형 수용소 포로들의 존재를 거론하며 '최초의 폭력'이 이들에서 비롯됐음을 말한다. 죽 한 그릇을 더 먹기 위해 나치에 협력하면서 크고 작은 특권을 쥔 이들이라 증언한다. 나치의 폭력성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수용소의 화장터 업무는 대체로 유대인들에 의해 이뤄졌으며 많은 폭력이 유대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인 존더코만도스를 통해 행해졌다는 대목을 읽다 보면 레비가 생환자로서 겪은 수치심과 죄책감의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살아남은 자로서 만끽해야 했던 해방감은 책에서 그다지 기쁘게 그려지지 않는다. 레비는 "어둠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다"고 표현한다. 혹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고 살아남은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수십 년 동안 유령처럼 그를 맴돌았을 것이다. 그는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는 말로 ‘가라앉은 자들’을 기린다. 살아남은 ‘회색지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증언을 지닌 자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결론에 도달해 레비는 책의 목적을 밝힌다.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247쪽)고 말하며 어느 시대에라도 나치즘과 같은 폭력이 재발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유용하건 쓸데없건 폭력은 우리 눈앞에 있다. 폭력은 뱀처럼 꿈틀대고 있다"는 레비의 마지막 외침은 세월호 참사라는 폭력 앞에 비통한 우리에게도 선명히 유효하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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