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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음악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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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음악을 다시 생각하는 이유
  • 한동운(음악칼럼니스트, 목원대 외래교수)
  • 승인 2014.06.02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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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노트 | 정치권력과 음악

때론 정치권력 나팔수, 때론 저항의 산물

한동운 교수
한동운 교수

"음악이란 우주의 조화를 구현하고 사회 질서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은 프랑스에서 나와야 한다." 영화 <왕의 춤>(Le Roi Danse 2000) 중 루이 14세가 이탈리아 출신의 궁정 음악가 륄리에게 한 말이다. 루이 14세에게 음악은 자신의 여흥과 프랑스 왕정의 위상을 드높이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현재 프랑스의 국격을 높여 주는 문화예술로 평가되고 고전음악이라는 월계관을 선사했다.

이렇게 음악은 순수한 심미적 가치로 평가되기보다는 정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선전용 음악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륄리는 오페라 <아튀스>(Atys 1676)에서 초목의 신 아튀스를 루이 14세로, 땅의 여신 퀴벨레(Cybele)를 여왕 마리아 테레제로 묘사하였다. 그뿐 아니라 오페라의 프롤로그에서 루이 14세를 위대한 인물로 묘사하고 전쟁과 평화의 업적을 높이 치하한다. 궁정음악가의 삶이란 고용자에게 아첨하고 그들의 취향을 고려한 작품을 써야하는 법, 이것은 륄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느 시대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의 여흥과 프랑스 왕정의 위상을 드높이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림은 이아생트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57×126.5㎝, 베르사이유 궁전 트리아농 궁 소장. ⓒwikipedia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있어 음악은 자신의 여흥과 프랑스 왕정의 위상을 드높이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림은 이아생트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157×126.5㎝, 베르사이유 궁전 트리아농 궁 소장. ⓒwikipedia

정치권력 앞에서 음악가들은 약자다. 음악의 위대함을 찬양하면서 정작 음악가와 그 작품은 권력의 전리품 정도로 치부한다. 20세기 세계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을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지휘자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작곡가와 연주자들 역시 정치권력에 동조하거나 이용당하기도 했다.

때론 정치적 이념 때문에 죽음과 직면해 있던 작곡가도 있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치적으로 공산주의자였지만 작곡가로서 검열이라는 굴욕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산당의 이념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았다. 그의 교향곡들이 걸작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이 자랑하는 재독 작곡가 윤이상 역시 정치권력의 희생자다.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와 사형선고, 그리고 극적인 구명운동과 망명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부당한 권력을 음악으로 고발하고 기록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다음 해인 1981년에 발표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와 박두진, 백기완, 고은, 문익환, 문병란, 김남주 등의 시로 1987년에 작곡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가 있다. 반면에 애국가(한국 환상 교향곡, 1936)의 작곡가 안익태는 독일과 만주국에서 친일 행적을 보이면서 친일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물론 당대의 정치 체제나 기득권을 풍자하거나 저항하는 음악가들도 있었다. 가령, 귀족의 몰락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던 페르골레시의 오페라 부파 <마님이 된 하녀>, 보마르셰의 풍자 소설 <피가로의 결혼>을 희극 오페라로 만들어 기득권의 체계에 저항했던 모차르트, 그리고 최고 권력자인 나폴레옹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귀족이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지 왜 내가 먼저 그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느냐고 괴테에게 따져 물었다는 일화의 주인공 베토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신념은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을 담고 있는 <교향곡 3번> ‘영웅’과 <웰링턴의 승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음악가들과 그들의 작품은 때로는 정치권력의 나팔수로, 때로는 저항의 산물로 태어난다. 지방선거, 총선, 대선이 돌아오면 항상 정치인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정치 공약으로 음악가들을 현혹하고 줄 세운다. 그리고 어떤 음악가들은 정치적 힘이 있어야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참여를 독려한다. 정말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 온다는 말인가? 나 자신의 안위를 위한 거짓 명분은 아닐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과 음악이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은 이미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져 있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로 이거냐 저거냐,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내 나이 불혹을 넘긴 지금,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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