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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코드’ 그 속에 숨어 있는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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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코드’ 그 속에 숨어 있는 풍자
  • 고경석 기자
  • 승인 2014.05.16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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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

허무맹랑·황당무계 화법 가득

오늘의작가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최경석의 첫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는 스스로 ‘막장’이라고 부를 만큼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화법이 가득한 책이다.
오늘의작가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최경석의 첫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는 스스로 ‘막장’이라고 부를 만큼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화법이 가득한 책이다.

2010년 단편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 신인 소설상을 수상하고 2012년 장편 <능력자>로 오늘의작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은 최민석(37)이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부터 올 초 발표한 ‘독립운동가 변강쇠’까지 단편 일곱 편을 모아 첫 소설집을 냈다. 스스로 ‘막장’이라고 부를 만큼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화법으로 가득한 책이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는 코미디 장르에서 즐겨 쓰는 ‘병맛’ ‘B급’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소설집이다. 작가는 부산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부산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이라는 오해를 벗기 위해 서울말을 배운다거나(‘부산말로는 할 수 없었던 이방인 부르스의 말로’) 공동경비구역 보초를 서던 북한군 장교가 과음 탓에 뜬눈으로 졸다 남한으로 엉겁결에 귀순한 뒤 또 엉겁결에 국회의원이 된다는(‘국가란 무엇인가’) 등 황당한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풀어놓는다.

최민석 지음 | 창비 펴냄 | 1만2000원
최민석 지음 | 창비 펴냄 | 1만2000원

소설을 읽는 건지 만화를 읽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17대 변강쇠’가 독립운동조직의 비밀 요원으로 등장해 대륙횡단열차에서 스페인의 ‘17대 돈 후안’과 결투한다는(‘독립운동가 변강쇠’) ‘누들누드’ 식의 음담패설과 화장실 유머가 넘친다. 작가는 수시로 작품 속에 등장해 시답잖은 농담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다. ‘독립운동가 변강쇠’의 등장인물 이재만을 이야기하면서 느닷없이 "참고로, 이재만은 필자에게 굉장히 불친절하게 대한 전력이 있는 염창동의 카센터 주인 이름"이라고 쓰는 식이다. ‘국가란 무엇인가’에선 괄호를 빌어 "이 소설은 공감각적 소설이다" "이 소설은 매우 직설적이다" "이 소설은 통속 대하 막장 단편 소설이다"라고 설명 아닌 설명을 계속 덧붙인다.

키치와 유치를 방정맞게 오가면서도 소설은 허풍으로만 끝나지 않고 한 방의 펀치를 남긴다. 사회 비판적 시각과 서정을 드러내는 대목이 종종 있다. ‘유리스탄 스타코프스키 아르바이잔 스타노크라스카 제인바라이샤 코탄스 초이아노프스키’라는 터무니없이 긴 이름을 지닌 이주노동자가 악행을 일삼는 공장 사장의 횡포를 참다못해 동료들과 함께 서울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돌격할 계획을 세운다는 표제작과 청와대 대신 국회의사당을 목표로 세운 "위대한 전작"의 속편에선 무디지 않은 풍자 정신과 얄팍하지 않은 페이소스를 읽을 수 있다. CD처럼 트랙 번호를 매긴 뒤 마지막에 ‘보너스 트랙’이라고 쓴 ‘누구신지…’는 치매에 걸린 노년의 남녀가 47년의 시간을 거쳐 오며 어떻게 사랑하고 엇갈렸는지 보여주는 신파 로맨스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미국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콜롬비아 작가 마르케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진짜 있었던 일처럼 꾸미는 데 재주가 있는 듯하다. 심지어 ‘작가의 말’에서도 그렇다. 그는 "나는 실로 섬세한 사내"이자 "실로 까무러칠 만큼 과학적인 사유를 하고, 기겁할 정도로 담백한 사내"라고 주장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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