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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희망 걸었는데, 돌아온 건 ‘절망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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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 희망 걸었는데, 돌아온 건 ‘절망과 분노’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4.03.27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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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분노한 모아미래도 입주예정자, 행복청 앞 시위

17년 맞벌이 끝에 마련한 희망의 집

매달 건설현장 구경 오며 설레였는데…

왜 희망이 좌절됐나, 각양각색의 사연들

"누구는 강제노역 일당이 5억 원이라지만, 저는 일당 몇 만원에 사는 소시민입니다."

지난 26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앞에서 만난 1-4생활권 모아미래도 1602동 입주예정자 A씨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A씨는 "17년 동안 맞벌이를 해서 어렵게 집을 마련했는데, 그런 집이 철근을 빼먹은 부실 아파트라니 억울하고 분해서 잠이 안 온다"고 토로했다.

이날 A씨와 같은 사연을 가진 모아미래도 입주예정자 150여 명이 정부세종청사 제7주차장에 모여들었다. 행복청과 가장 가까운 공터인 이곳에서 부실시공 아파트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내 권유로 분양받은 지인들께 죄송"

오전 10시.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분노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대전 노은에 거주한다는 B씨는 "이미 거주하던 집을 팔고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리에 나앉게 생겼다"고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사실 B씨에겐 더 큰 걱정이 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웃집 할머니에게 함께 이사 가자고 권해 모아미래도 아파트를 같이 분양받았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할머니에게 죄인이 된 셈이다.

B씨는 "할머니가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하소연을 하는데 뭐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며 "그래도 할머니가 입주자대표단에게 전해달라고 10만원을 꼭 쥐어주며 오히려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 해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B씨와 비슷한 사연을 지닌 사람이 또 있었다. 1902동 9층 아파트를 분양받았다는 C씨는 "아파트 위치며 구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친구와 언니에게까지 권해 모두 1000만∼2000만 원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아파트 분양권을 샀다"며 "내가 입은 손해는 둘째 치고 친구와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라고 하소연했다.

"계약해제하거나 건물 다시 지어라"

가족과 함께하는 따뜻한 보금자리를 꿈꿨던 50대 가장의 분노도 만날 수 있었다. 대전 노은에 거주한다는 D씨는 "정말 여러 번 도전 끝에 어렵게 분양을 받아 기쁨이 더 컸다"며 "아파트를 분양받고 매달 한 번씩 가족과 함께 건설현장을 둘러보며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D씨는 "예전엔 대전에서 세종으로 올 때 금남교를 건너며 설레임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면 이제는 분노 때문에 가슴이 뛴다"며 "계약해제를 하거나 건물을 아예 허물고 다시 짓는 것 말고는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에서부터 고령의 노인들까지 각양각색의 입주예정자들로 집회 열기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분노도 더욱 크게 표출됐다. 1903동 9층 계약자인 E씨는 "분신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행복청 사건해결에 미온적, 실망"

E씨는 "부실시공 사건이 언론에 최초 보도되기 이틀 전에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살던 집을 팔았다"며 "아내의 원망도 원망이지만, 평생 느껴보지 못한 억울함에 치가 떨린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는 "학생운동이 한참이었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지만 ROTC(학군단)에 다녀 친구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고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주저하는 편"이라며 "이젠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사건이 완벽하게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입주자 비상대책위 임원진은 처음으로 행복청과 시공사인 모아미래도 관계자 등과 3자 대면에 나섰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공식적인 만남은 처음이었다.

이 자리에서 입주예정자들은 행복청 행정처분을 통한 공사 중단, 철근을 포함한 콘크리트 강도 등 전반적인 아파트시설에 대한 전수조사 실시, 입주예정자 주관 조사기관 선정 등 3개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입주자 비대위 관계자는 "당장 첫 번째 요구조건인 공사 중단에 대해서도 행복청은 ‘시간을 더 달라’며 미온한 자세를 보였다"며 "투명하고 공정하게 조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상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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