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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동창생, 한국현대사 뒤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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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동창생, 한국현대사 뒤흔들다
  • 김재중 기자
  • 승인 2014.01.2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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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 기자의 뉴스리뷰 문익환과 정일권

세상 뜬지 20년 지나도 ‘투사’와 ‘권력자’
‘반독재투쟁의 상징’과 ‘독재정권의 2인자’
1994년, 마지막 가는 길도 ‘극과 극’ 풍경

정확히 20년 전인 1994년 1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과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 본관 앞에서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된 영결식에는 당시 김종필 자민련 총재, 이만섭 국회의장, 이회창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재순, 채문식 전 국회의장, 남덕우, 강영훈, 정원식, 노재봉, 황인성 전 총리, 민복기 전 대법원장 등 전·현직 3부 요인이 대거 참석했다. 영결식 뒤 유해는 국방부 의장대의 조총을 뒤로하고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국립묘지로 운구 됐다.

같은 시각, 여의도에서 15㎞쯤 떨어진 한신대 신학대학원 앞에는 4000여 명의 군중이 운집해 한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하고 있었다. 김대중 전 민주당대표, 이기택 민주당 대표, 박찬종 신정당 대표와 계훈제 선생, 지선 스님, 박형규 목사, 임수경 씨 등 재야인사들이 대거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 후 유해는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에 도착, 수만 명의 시민과 대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근태 장례홍보위원장의 사회로 노제를 지낸 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으로 향했다.

이튿날인 1월 23일, 전국 주요 일간신문은 두 사람의 장례식 풍경을 사회면 주요 기사로 다뤘다. 대다수 신문이 고인의 생전 인연에 대해서 별다른 소개를 하지 않은 채 장례식 풍경을 건조하게 다뤘지만 동아일보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만주간도의 광명중학교 동문"이라는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그리고 ‘양극(兩極)인생’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윤동주기념사업회가 소장 중인 문익환(뒷줄 가운데)과 윤동주(뒷줄 오른쪽)의 숭실중학 시절 사진. 기념사업회 설명과 달리 일각에서 이 사진이 숭실중이 아닌 만주 광명학교 시절 사진이며 앞줄 인물이 정일권, 뒷줄 왼쪽 인물이 장준하라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양극 인생

양극인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전 국회의장이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을 만큼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지만, 그 내용과 방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늦봄’ 문익환 목사. 1918년 중국 만주(현 연변 룡정시 지산진)에서 태어난 문 목사는 일생을 반독재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바쳐온 기독교사회운동가다. 젊은 시절 윤동주, 장준하 선생과 절친한 동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 이전 문 목사는 사회운동가의 삶을 살기 보다는 진보적 관점의 성서번역 등 주로 학문적 분야에 매진했으나 1975년 ‘벗’인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반독재운동에 주력했다.

전두환 정권 출범 후에도 재야단체의 선봉에서 군부독재 반대운동을 벌였으며 1989년 방북, 김일성 주석과 회담하고 귀국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이때까지 옥고를 치른 횟수만 7차례에 이를 정도였다. 1993년 출소 뒤 1994년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기까지 통일운동과 강연에 매진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반면 정일권 전 국회의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삶의 궤적을 함께하며 독재 권력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만주 광명학교 졸업이후 정 전 의장은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기록으로는 정 전 의장이 박 전 대통령의 4년 선배다. 박 전 대통령은 ‘다카키 마사오’, 정 전 의장은 ‘나카지마 익켄’으로 개명한 뒤 만주군 장교로 임관했으며 주 임무는 독립군 토벌이었다.

해방이후 한국군 장성이 된 정 전 의장은 육군참모총장과 육해공 총사령관을 지낼 만큼 승승장구했으며 1957년 예편 뒤 외교관이 됐다. 5·16쿠데타가 발생하자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해 정권의 핵심 실세로 등장한다. 급기야 1964년 2인자인 총리로 임명됐고 한일협정 체결의 주역이 됐다. 1970년 정인숙 살해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물의를 빚자 총리직을 사퇴하고 정계에 입문했다. 공화당 3선 국회의원, 국회의장을 역임한 뒤 1980년 정계를 은퇴했다.

추도식, 두 풍경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지난 18일 열린 20주기 추도식 모습도 두 사람의 인생역정만큼이나 판이하게 달랐다.

정 전 의장의 추모식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열렸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정 전 의장의 집념과 도전,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라는 추모사를 낭독했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 이철승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문 목사의 추모식은 그가 서 있던 ‘거리’에서 열렸다. 촛불문화제 형식으로 열린 추모제에서 문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 씨는 "4대강 삽질을 저지른 범죄자들과 대선부정의 관계자들을 처벌할 때까지 문익환과 함께 촛불을 끝까지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진행된 모란공원 추도식에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문재인 의원, 정의당 천호선 대표,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 등 야당정치인들이 참여해 고인을 추모했다.

만주 광명학교 동창생인 문익환과 정일권. 같은 날 세상을 떠날 정도로 기구한 인연을 지닌 두 사람.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강산이 두 번 바뀌었지만, ‘엇갈린 길’의 간극은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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