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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무더위 견딘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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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무더위 견딘 보람
  • 송영웅(한국일보 전략기획실장)
  • 승인 2016.07.13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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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 에너지 과소비 사회

생활패턴 바꾸면 전력대란 해소 가능
가정용 전기료 인상 서민들 부담
대규모 발전소 건설 바람직하지 않아
결론은 무더위 조금만 참는 것

지난 한 달여간은 정말로 밤이 두려웠다. 낮에는 회사에서 시원한 에어컨 덕을 보지만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면 그야말로 찜통더위와의 한판 전쟁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취침에 들어가기 직전 한 두 시간 동안 에어컨을 틀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가족 구성원이 모두 모였을 경우에 한해서였지만. 하지만 지난 2~3년 사이 가정용 전기료가 크게 오르면서 올해 들어 아내는 저녁시간 대의 에어컨 가동을 아예 중단 시켰다. 아내의 폭탄선언에 필자는 "원전 고장으로 블랙아웃도 될 수 있는 상황이라 절전은 국가를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옆에서 거들었지만, 벌이가 변변치 못한 가장인 탓에 속으로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밤 열대야에 시달렸던 이유는 집도 한 몫을 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15층짜리인데 사는 집이 공교롭게 15층 최상층이었다. 아파트 최상층은 초저녁에는 한낮동안 받은 복사열로 달아올라 있는 반면, 한밤중부터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통풍이 잘되는 덕에 비교적 시원한 새벽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워낙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에 새벽녘에도 땀으로 흠뻑 젖은 날이 예년보다 잦았다. 한 여름 밤의 공포는 이렇게 시작됐다.

사실 요즘 여름 무더위가 예전보다 크게 차이 날 정도로 더 더운 것은 아니다. 선풍기나 부채에 의존하던 전과 달리 요즘은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다. 사무실은 어디나 하루 종일 냉방장치를 돌리는 게 기본이다.

그러다보니 유독 더위를 제대로 체험(?)하는 곳은 집밖에 없다. 다른 시원한 바람은 내가 직접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혜택이지만, 집안의 에어컨만은 유독 나의 부담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만큼 에어컨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요즘 전기 즉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본인이 원했든 안했든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고 있다. 그것이 화석 에너지든, 아니면 위험이 높은 원자력 에너지든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

올해는 잇단 발전소 고장으로 온 나라가 전기 절약 소동에 매달렸다. 기본적으로 쓰이는 전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무의식적으로 에너지 과소비적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생활 패턴을 조금만 바꿔도 이런 전력난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당이 최근 전기료 누진제 체제를 개편하겠다고 나섰다가 크게 혼쭐이 났다. 우리나라의 전기료는 세계 각국 수준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인데, 이를 개선해 소비를 줄이고 전력대란을 막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필자의 경험에서도 봤듯 가정용 전기료를 올리는 것은 전기 절약의 심리적 효과가 매우 크다. 여당 입장에서는 서민들의 강한 역풍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유권자의 눈치만 보는 정치권이 여론에 민감한 사안을 끝까지 밀고 갈지는 미지수다.

개인적으로 이제 더 이상 화력 발전소든 원자력 발전소든 대규모 발전소를 더 건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화력 발전소는 급등하는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의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원전에서 보듯 위험성이 높은 원자력발전소를 무작정 늘리는 것도 대안은 아니라고 본다.

결론은 간단하다. 무더위를 조금만 참으면 된다.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면 된다. 절약이 쉽지 않은 의료, 산업, 교육 등의 분야는 그대로 놔두되 사회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낭비되는 전력은 절약이 충분히 가능하다.

지난주 처서(處暑)가 지나면서 새벽녘의 바람은 어느 덧 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새삼 대자연의 순리에 경외감을 갖게 된다. 이런 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도 여름밤의 무더위를 견딘 보람이라고 여기면 과장일까. 아마 에어컨에 의지해 여름밤의 무더위를 넘겼다면 이런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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