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댓글
변상섭, 그림속을 거닐다
세종시교육청 공동캠페인
참새의 눈에서 세상을 얻다
상태바
참새의 눈에서 세상을 얻다
  • 유병로(한밭대 건설환경조형대 학장)
  • 승인 2013.05.24 15: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운동의 길

부처님 오신 날 가족들과 함께 동내 뒷산을 올랐다. 오랜만의 산행이어서 아직도 봄 꽃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나뭇잎이 하늘을 가리고 바닥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오늘따라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다. 등산하는 우리 일행을 따라오기라도 하는 듯 몇 마리가 좌우를 날아가며 우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등에 갈색 줄무늬가 있는 토종 다람쥐도 사람들을 지켜보고 서 있다. 어깨 남짓한 참나무 가지위에 하늘 다람쥐가 앉아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많은 등산객과 친분을 다져온 터인지 불과 한 팔 거리에 있는데도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예전 생각이 났다. 천안의 광덕산 두메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겨울에는 눈밭에 참새 틀을 놓아 참새 숯불구이를 즐기고 비가 오면 동네 친구들과 냇가에 나가 뜰채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즐겼다. 사냥꾼 기질이 있어서 돈 벌면 공기총을 사는 게 꿈이었다. 1982년 월급이 24만원 이었는데 몽땅 털어 35만 원짜리 공기총을 샀다. 그리고 겨울 내내 주말마다 홍릉에 있는 KIST 독신자 숙소에서 총을 메고 서너 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광덕산에 새를 잡으러 다녔다. 사냥은 정말 신나는 놀이였다. 눈 덮인 산을 몇 개 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시골부모님을 매주 뵙고 새도 몇 마리 잡아드리는 효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5월 어느 봄날이었다. 나뭇가지에 참새가 앉아 있어 총부리를 겨누고 가까이 다가갔는데 아무리 가까이 가도 미동도 없이 총구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총구에서 50㎝ 거리에서 참새와 2-3분 눈을 마주 응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참새의 천진난만한 눈동자에 내 모습이 비춰져 보였고, 참새가 산산조각이 날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나는 그만 총을 내려놓고 한동안 멍하니 참새와 깊은 묵언 참선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애지중지하던 총을 없애고 살생을 금하게 되었다. 지금도 뚜렷한 종교가 없지만 육식을 좋아하던 습성 때문이지 호전적이라 할까, 뭐든 잡아먹는 걸 좋아 했었는데 사냥은 물론 물고기 잡는 것도 끊었다. 또 가끔 즐기던 낚시도 안하고 심지어 집에 키우는 애완견도 예전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대학 때는 사람중심을 외치며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인권유린 현장을 찾아다니고 198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서서 늘 공부보다는 엉뚱한 사회적 관심사에 몰려 다녔는데 참새와의 눈싸움에 밀려 환경문제에 더 깊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람은 물론 동물에 대한 배려심이 커졌다. 1990년대 초반 환경운동단체를 만들 때 여러 단체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람들은 재미로 참새를 죽이지만 참새에게는 일생을 마감하는 끔찍한 사건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그것도 강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면 약육강식의 경쟁논리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항상 일등이고 최고가 될 수 없으므로 언제나 실패자가 되고 만다. 최선을 다하는 선의의 경쟁은 필요하지만 언제나 효율만 강조하는 상호약탈 경쟁을 피하고 사람과 동물, 강자와 약자가 서로의 특성을 살려 상호 보완적으로 상생의 길을 찾을 때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참새가 달아났으면 방아쇠를 당겼을 텐데, 끝까지 나를 응시한 참새의 가엾은 눈에서 나를 발견하고 나 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세상의 만물은 존재의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 내가 그들의 존재 이유를 모두 안다고 말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때 그 참새가 나를 가엾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Tag
#NULL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