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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국면, 라이스를 기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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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국면, 라이스를 기억하는 이유
  • 김재중
  • 승인 2013.04.26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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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정책 거부했던 美강경파, 북 주권은 인정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事實)은 모두 진실일까.

사실과 진실은 대부분 부합하지만 간혹 사실로 믿고 있는 상식이 허구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사실에 ‘우상(偶像)과 왜곡’이 끼어들면 여지없이 거짓 상식이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언론의 ‘사실 보도’란 것도 진실의 관점에서 보면 ‘우상과 왜곡’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때로 우상과 왜곡은 인간의 집단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식과 이성에 대해 끊임없는 ‘의심’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가장 큰 책무가 아닐까. 진보언론의 종가(宗家)였던 월간말부터 신생언론 세종포스트까지, 필자가 13년 동안 빼곡히 적어놓은 취재수첩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보수일변도의 부시 행정부 집권 당시에도 한반도 긴장관계가 최근처럼 악화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시 집권시기인 2000년대 초중반 북한은 6자회담과 핵실험이라는 강온책으로 아슬아슬한 시소게임을 펼쳤다. 외형상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미 행정부를 장악하고 당장이라도 북한을 선제공격할 의사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한반도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기보다 적절한 선에서 관리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 외교의 전면에 섰던 흑인여성

그리고 미국 외교의 전면에는 ‘콘돌리자 라이스’라는 걸출한 흑인 여성이 서 있었다. 최근 미국 민주당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공격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일부 미국 언론은 "라이스에 필적할 외교적 수완을 갖춘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꺼내놓고 있다. 그만큼 라이스는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국무부 장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집권 내내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했던 부시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란·이라크 등 중동과 여기에 버금가는 (미국의) 위험요소인 북한을 두루 관리할 강력한 국무장관의 존재가 필요했고 라이스가 적격자였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라이스는 직업외교관답게 모호함으로 무장하기보다는 때로는 강력한 언사를 구사하고 때로는 유화적 제스처를 쓰는 인물이었다. 조지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북미관계를 극도로 긴장시킨 계산된 노림수도 라이스로부터 나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라이스는 스스로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북한이 미국의 선제공격을 우려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실제 ‘악의 축’으로 규정됐던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미국의 군사적 대응에 무너져 버린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기자는 라이스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대북정책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한국의 기자들과 라운드테이블에 둘러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라이스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의사가 없음을 극구 강조했다.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으로 냉각될 대로 냉각된 북미관계에 대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음은 당시 기자가 던진 질문에 대해 라이스 장관이 답변한 내용이다.

▲ 지난 2005년 3월 한국 기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라이스 "북한은 주권국가, 선제공격 안한다"

- 직업상 수차례 북쪽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미국이 선제공격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그들은 미국에 안전보장 약속을 먼저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나?

"이미 부시 대통령과 전임 국무장관, 그리고 이제는 제가 국무장관으로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힌 것 이상으로 이 점을 북한에 어떻게 더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미국과 한국은 대북 억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만일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이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대북 선제공격을 바랄 이유도 없다.

미국은 북한이 주권 국가임을 알고 있으며 나는 이 점을 바로 어제 일본에서 연설할 때도 이야기한 바 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실 아마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북한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유는 그들이 그런 우려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기 원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도 2002년 방한했을 때 그렇게 말했다. 다시 말해 대북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국의 오래된 정책이다. 안전 보장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현재 이슈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냐는 것이다. 만일 북한이 핵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핵포기 선택을 하고, 핵포기 선언을 하고, 그리고 이를 검증할 만한 방법을 제공하면 된다. 미국은 그럴 경우, 안전 보장이 6자 회담의 구도 내에서 가능하다고 이미 밝혀왔다. 북한은 단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6자 회담 참가국으로부터도 안전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북한이 6자 회담으로 복귀한다면,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햇볕정책에 거부감 가졌던 강경파

라이스가 "미국은 북한이 주권국가임을 알고 있다"고 언급한 내용에 대해 당시 어떤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기자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파격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사실 북한의 주권을 용인하는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모 방송토론에 출연한 한 패널이 북한의 주권에 대해 언급했다가 보수논객의 색깔공세에 시달릴 정도로 극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미국 ‘보수파의 입’으로 통하는 라이스가 북한의 주권을 인정하고 선제공격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으니 의미심장하게 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라이스의 말에도 뼈는 담겨 있었다.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라이스의 발언은 "선제공격을 받기 싫으면 핵을 포기하라. 그러면 6자회담 틀 내에서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여러 혜택을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본질적으로 라이스는 대북강경파였다. 라이스는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지난 2001년 3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론하며 "회담 분위기는 우호적이었으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는 조금도 좁힐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햇볕정책에 대해 라이스와 부시 행정부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라이스는 스탠퍼드대 교수로 일하다가 부시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2001~2005년)으로 활동했고 2기 행정부 때는 흑인 여성 최초로 국무장관(2005~2009년)을 역임했다. 퇴임 후 스탠퍼드대 교수로 돌아온 그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미트 롬니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도왔고 최근 방송해설자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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