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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 사냥꾼의 거짓말에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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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말뚝 사냥꾼의 거짓말에 아직도…
  • 김재중
  • 승인 2013.03.11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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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민족주의가 만든 ‘집단최면의 주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事實)은 모두 진실일까.
사실과 진실은 대부분 부합하지만 간혹 사실로 믿고 있는 상식이 허구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사실에 ‘우상(偶像)과 왜곡’이 끼어들면 여지없이 거짓 상식이 탄생하곤 한다.
때문에 언론의 ‘사실 보도’란 것도 진실의 관점에서 보면 ‘우상과 왜곡’을 감추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때로 우상과 왜곡은 인간의 집단지성마저 마비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상식과 이성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가장 큰 책무가 아닐까.
진보언론의 종가(宗家)였던 월간말부터 신생언론 세종포스트까지,
필자가 13년 동안 빼곡 히 적어놓은 취재수첩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다.
<편집자 말>

▲ 지난 2005년 인터뷰 당시, 소윤하 민족정기선양위원회 회장은 서울대 AMS연구실에 의뢰해 자신이 뽑아낸 쇠말뚝이 일제시대의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지만 확인결과 ‘거짓’이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묵인 아래 일본의 풍수사들이 한반도의 기(氣)를 끊기 위해 쇠말뚝(혈침)을 박았다는 이야기에 분노하지 않는 한국인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쇠말뚝을 박았다는 일본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역사적 사료나 증언이 너무나 부족하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동원과 같은 전쟁범죄처럼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
이번에 세종시에서 벌어진 ‘쇠말뚝 뽑기’ 행사와 비슷한 해프닝은 줄곧 이어져 왔다. 지난 2005년 말, 기자는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남한산성에 무려 50여 개의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실을 접하고 심층취재에 나섰다. 당시 공영방송 KBS가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남한산성에 쇠말뚝을 심어놓았다"고 단정하며 "신사참배로 한일 관계에 먹구름이 낀 가운데 이 같은 소식은 우리 국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이 단초가 됐다.

정체불명의 ‘야마시타 신화’

쇠말뚝과 관련해 언론에 가장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은 민족정기선양위원회 소윤하 회장이다. 그는 남한산성 쇠말뚝을 뽑아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세종시 전월산 쇠말뚝을 뽑아낸 자타공인 ‘쇠말뚝 사냥꾼’이다.
"일제 사령관이었던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처형당하기 전에 조선 땅 전역에 모두 365군데의 혈침을 박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그의 통역관으로 일했던 신세우라는 사람이 직접 들었다는 군요."
2005년 인터뷰 당시 소 회장이 기자에게 털어 놓은 이야기다.
그러나 월간 『군사세계』의 김능화 논설위원이 전범 재판기록 등 역사적 사료를 분석해 작성한 「야마시타 육군대장의 최후」라는 글에 따르면, 야마시타의 통역관은 ‘하마모토’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일본인이었다. 당연히 조선인 통역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사실 ‘야마시타’는 보물사냥꾼들에게 더 유명하다. 일제 패망이 짙어지자 동남아 등에서 약탈한 보물을 감춘 인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제 쇠말뚝’은 정체불명의 ‘야마시타 신화’에서 출발하고 있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의 비밀

소 회장은 야마시타 증언을 토대로 남해안의 무인도 ‘백도’의 해안절벽에 매달려 26개의 쇠말뚝을 뽑아냈으며 서울대에 연대측정을 의뢰해 쇠말뚝이 일제시대 것임을 밝혀냈다는 주장도 펼쳤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 결과, 탄소의 연대가 3만년으로 나왔어요. 3만년 이라는 것은 석탄이라는 이야기거든요. 일제시대에 우리 측은 숯을 사용해 쇠를 제련한 반면, 일본은 석탄을 사용해 쇠를 제련했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제련한 쇠라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박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지요."
그러나 탄소연대 측정과 관련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250만 달러짜리 고가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는 서울대 AMS 연구실 관계자는 "2001년 무렵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연대측정을 할 수 없었다"며 "탄소를 추출해 연대를 측정하려고 했는데, 당시의 쇠말뚝은 연철로 탄소량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관계자는 "공업적으로 제강된 철, 즉 화석연료를 통해 만들어진 철은 탄소연대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방법으로 쇠말뚝이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인지 구별해 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기억에만 의존하는 쇠말뚝의 실체

남한산성 쇠말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2005년 당시 민족정기선양위 측에 장비와 인력 등 예산을 지원한 하남시청 관계자는 취재가 이어지자 "고리 모양의 쇠말뚝이 규칙적으로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의 소행이 아닌 것 같다"며 얼마 안가 말끝을 흐렸다. 남한산성 주변에 오랜 기간 거주해 온 주민들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뉴스 진행자가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겠다며 남한산성에 심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들고 나온 쇠말뚝의 실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민간이 아닌 공공기관 역시 일제 쇠말뚝과 관련해 뚜렷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일제 쇠말뚝’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다는 독립기념관 관계자는 "기증받은 쇠말뚝은 일제시대의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더 걸작이다. "풍수지리전문가들이 그러더라"는 게 유일한 근거였다.
현재 쇠말뚝의 실체와 관련해서는 일제의 혈침이라는 주장과 함께, 일제가 측량목적으로 박아 놓은 측량말뚝이라는 주장, 군사용 목적의 쇠말뚝이 일반에 와전됐다는 주장, 국내 무속인들의 소행이라는 주장 등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김재중 기자 jjkim@sj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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