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여배우를 탐닉하다]
영화 <동방불패>(정소동, 1992)의 원전이 되는 중국무협소설 『소오강호』에서는 아닌 게 아니라 동방불패는 자신의 권좌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악무도한 욕망의 화신로 그려졌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배우 임청하의 모습 때문에 소설속 이미지에 대한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여린 얼굴선에서 매섭고 강한 풍취가 우러나온다. 누가 쉽게 ‘악’만을 떠올릴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 동방불패는 고도의 무공을 연마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까지도 일말의 여성스러움을 지니게 됐다. 살기 번득이는 장풍과 연인에게 던지는 미소가 서로 충돌하는 캐릭터다. 사랑에 흔들린다고 몸안에 쌓아둔 최고의 권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을 느낀 연인을 향해 공격하는 날카로운 몸놀림이 잠시 방향을 수정하는 것뿐이다.
바늘 하나 찌를 수 없는 반듯한 외모를 보이며 나타난 여배우 임청하이지만 영화 <중경삼림>(왕가위, 1995)에서는 삶의 의미를 잃고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마약중개인으로 등장한다. 극과 극을 달리는 여배우의 관록있는 연기를 보는 것은 즐겁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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