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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이 배우는 한글, 삶의 의욕을 새롭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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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그막이 배우는 한글, 삶의 의욕을 새롭게 해”
  • 김소라
  • 승인 2012.08.14 0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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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평생교육연구원 문해교실에서 한글을 깨우치는 어르신들을 만나다

어려운 시절로 인해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교실이 열리는 날, 평생교육연구원(원장 정순기, 구 연기도서관) 강의실엔 바깥의 폭염 못지 않은 열기가 넘친다.

4년 전 문을 연 어르신 문해교실은 배움에 목마른 어르신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삶의 의욕을 새롭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초급반, 중급반으로 나누어져 운영되는데 중급반은 초기부터 3년 이상 꾸준히 공부한 실력파들이고 초급반은 공부를 처음 시작한 어르신부터 2년 된 어르신까지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모여 있다. 한여름 폭염을 이기는 한글공부 현장에서 글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진 어르신들을 만났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평균 연령 70대의 어르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향의 봄을 합창한다. 더듬더듬 노래 부르는 소리는 어딘지 매끄럽지 않지만 칠판에 적힌 노랫말을 읽는 눈빛만은 살아있다.
"고향하면 생각나는 것은?"
"엄마!"
"친구!"
"애인!"
"아이구, 아직도 애인 생각이 나남?"

▲ 김민정 어르신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1년 쯤 된 김민정 할머니(70세, 조치원읍 평리)는 "이제 글을 더듬더듬 읽는 정도"라고 얼굴을 붉혔다. "읽기는 읽는데 이해가 빨리 오지 않고 뜻을 잘 몰라 아직은 답답하다"는 김 할머니. "진작 배우지 못한 게 한"이라는 김 할머니가 문해교실에 오게 된 사연은 독특하다. 이웃 친구가 어디를 다니는데 궁금해서 물어도 얘기를 안 해줘서 몰래 따라와봤단다. 결국 창피해하던 친구분이 귓속말로 글공부를 하러 다닌다는 말에 당장 따라나서 문해교실에 들어왔다. 글씨를 알게 되면서 세상이 달라보인다는 김 할머니는 요즘 이웃 친구들에게 문해교실을 ‘강추’하는 전도사가 되었다.

▲ 김점산 어르신

문해교실 최고령자인 김점산 할머니(81세, 조치원읍 교리)는 초급반 3개월차다. 80이 넘어서 배우기 시작한 글공부가 어려울 법도 한데 표정이 여간 밝은 게 아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제 와서 배워 뭐하나 하기도 했지만 배우니까 참 좋다. 선생님도 잘 가르쳐 주고 배움이 즐겁다. 이제 복지센터 가서 일도 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늦게라도 글을 배우면서 혼자 간판도 읽고 은행에서 스스로 돈 찾는 일도 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는 김 할머니는 가족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더 빨리 익히고 싶은 욕심에 집에서도 열심히 읽고 쓰고 받아쓰기를 연습한다는 김 할머니는 1주일에 두 번 문해교실 오는 날이면 공부할 생각에 기분이 더 좋다며 죽기 전까지 배움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 연재순 어르신

초급반 반장이자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는 연재순 할머니(77세. 조치원읍 상리)는 문해교실에 온지 벌써 2년을 넘어서 초급반 최고참이다. 진작 중급반 승급을 해야 했지만 반장으로 책임감 때문에 아직 머무르고 있다는 강남춘 강사의 귀띔이다. 초급반은 학생들의 수준이 워낙 다양해서 강사 혼자 이끌어가기 힘든데 그 때 반장이 다른 학생들을 챙겨주기도 하고 모르는 걸 알려주기도 하면서 도우미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또 우스갯소리를 곧잘 해서 반의 분위기를 재밌게 이끌어 반장님이 없으면 수업 못한다는 칭찬에 연 할머니는 "강사 선생님이 상냥하고 잘 가르쳐주셔 공부를 재밌게 하는 거다, 저런 분 없다"며 공을 강사에게 돌렸다.

연 할머니는 "연필도 못 잡아봤는데 배워서 이름이라도 쓸 줄 알게 되니 너무 즐겁다"면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모르는 게 있어도 질문을 잘 못한다. 선생님이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이날 처음 문해교실에 온 이영자 할머니(74세, 조치원읍 서창리)는 "나이먹고 쑥스러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나왔는데 진작에 올 걸 그랬다"며 일찍 시작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자식들을 모두 여의고 혼자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혼자서는 어려워서 못 배울텐데 이제 시작을 했으니 열심히 배워서 자식들에게 편지도 쓰고 책도 읽고 싶다"고 말했다.

늦은 공부로 새 삶의 의욕을 찾고 있는 어르신들이 새내기부터 수년된 경력자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서로 도와가며 같은 꿈을 향해 가는 정겹고 훈훈한 모습, 문해교실이 더 의미있는 이유가 아닐까?



"어르신들 반짝거리는 눈빛에 힘이 절로 납니다"

4년 전부터 계속 어르신들에게 한글교육을 시키고 있는 강사 강남춘 씨는 보람이 남다르다며 어르신 한글교육에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보였다. 특히 4년 전 수줍게 도서관을 찾았던 어르신들이 이제 스스로 읽고 쓰는 즐거움에 새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여간 뿌듯한 게 아니라고.

"처음 시작할 때는 글을 모른다는 부끄러움에 몰래 찾아오던 분들이 이제 편지도 써 주고 당당해진 모습을 볼 때 감동해서 우는 일이 많다"는 강남춘 씨.

그 역시 다양한 수준의 어르신이 모여있는 초급반 수업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어르신들은 받아쓰기에 집착하는 모습이 많아 수준별로 일일이 받아쓰기를 불러줘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정신이 없다. 하지만 어르신들끼리 서로 도우면서 같은 마음을 나누는 모습에 ‘더디게 가자’는 마음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과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강남춘 강사는 "어디를 가더라도 이렇게 열정적인 분들은 못 만날 것"이라며 어르신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볼 때마다 저절로 힘이 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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